▲ 김성진 기자

[제주도민일보 김성진 기자]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토요일,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 딸과 단 둘이서 모처럼 봄나들이에 나섰다. 차 안에서 느껴지는 햇살의 따사로움과는 달리 바깥 날씨는 꽤나 쌀쌀했다.

사실 3년 전부터 매주 토요일은 막내와 나 만의 시간으로 채워져 왔다. 토요일이 일주일 중 가장 바쁜 애 엄마에겐 우리와의 동행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중3이 된 큰 딸은 2주일에 한번 잠시 우리의 동행객이 되어줄 뿐…. 소위 대학영재를 둔 덕(?)에 올해로 3년째 토요일마다 제주대를 오가는 길을 함께 하고 있다. 이때도 어김없이 막내가 차에 동승한다.

겨울철 토요일엔 추운 날씨 탓에 곧장 애 할머니 댁으로 향하기가 일쑤였다. 밖에서 뛰놀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감기에 걸리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막내가 책읽기를 좋아해 도서관을 찾아가는 것도 토요일의 주요 일과 중 하나가 됐다. 우당도서관, 제주도서관, 기적의도서관… 심지어는 집에서 꽤 떨어진 한라도서관까지 가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지루한 겨울을 넘기고 따사로운 봄 햇살이 방안 가득 드리워진 토요일 오후, 막내와 함께 일상으로부터의 ‘영광의 탈출’을 감행했다. 정해 놓은 행선지도 없이 무작정 차를 몰았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나선 길이었지만 1시간도 채 안 돼 이 녀석이 배고프단다. 예전 가족여행 때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일까. 컵라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꼭 편의점에서…. 편의점 앞에 잠시 차를 멈춘 뒤, 컵라면을 대령(?)했다. 라면 하나 먹는 것을 벅차하는 애가 이 날 만큼은 컵라면 하나를 뚝딱 해치웠다. 그것도 불과 1시간 전에 점심밥을 챙겨 먹은 녀석이 말이다.

“채담아, 우리 기차 타러 갈까”
내 제안에 녀석이 “좋다”며 맞장구를 쳤다. 몇 시간 동안의 방황 끝에 우리 둘은 목적지를 에코랜드 테마파크(숲속기차여행)로 정하고 그 곳으로 향했다.

2년 전 딱 한번 들렀던 곳이라 위치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어렴풋한 기억을 믿고 일단 번영로를 달렸다. 하지만 내 기억이 잘못됐음을 알아챈 것은 한참을 달리고 난 후였다. 성읍 민속마을에 거의 다다르고 나서야 ‘진작에 교래리 방향으로 빠졌어야 했는데…’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는 사이 막내는 뒷좌석에서 곤히 잠을 청하고 있었다.

차를 돌려 목적지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6시를 얼마 남겨두지 않는 시점이었다. 살포시 단잠에 빠져든 아이를 간신히 깨워 허겁지겁 매표소로 달려갔다. 하지만 매표소 직원으로부터 들려온 말은 방금 전 막차가 출발했다는 얘기뿐이었다. 미안함에 막내의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내 마음을 헤아렸던 것일까. 막내는 “괜찮아요. 실수할 수도 있지…. 다음에 와서 타요”라며 오히려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하는 내 속마음을 녹여 주었다.

엄마의 ‘껌딱지’ 막내 녀석. 앞으로도 토요일만큼은 내 그림자를 밟으며 내 뒤를 졸졸 따를 것이다. 녀석이 나를 마다하지 않는 한 우리 둘만의 ‘추억 만들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돌아오는 토요일엔 나의 실수로 날아가 버린 막내와의 약속을 꼭 지켜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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