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현문권 / 천주교 제주교구 신부

▲ 현문권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역사에 대한 성찰을 강조하는 말이다. 6년간 계속되는 제주 해군기지 논란에 대해 그 시초가 어떠했는지 다시 기억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과거의 잘못된 결정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문제를 6년째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2007년 5월 14일 김 태환 전 지사는 제주해군기지 수용의사를 밝혔을 뿐 아니라, 도민들의 의견을 빌려 한·미 FTA 이후 제주지역산업 재편방안을 밝혔다. 특히 정부를 향해 “한미 FTA 타결로 인한 감귤산업을 비롯해 제주경제의 붕괴위기 속에서도 국가안보를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선동의-후합의’ 결정을 내린 만큼 중앙정부가 도민의견을 존중, 제주특별자치도 완성을 위한 특단의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김 전 지사의 선동의 후합의는 그 순진한 의도와는 달리 감귤은 FTA에서 어떠한 보호를 받지 못했고, 해군기지 문제는 자신의 관할권 안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권한도 없이 제주도민의 자존심마저 무시당하는 상황이 됐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한자성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팽(烹) 당한 것은 제주도정 만이 아니라 제주도 의회도 마찬가지이다. 2009년 12월 17일 국방부와 해군 그리고 제주도지사의 의도대로 제8대 제주도의회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 중심으로 24명의 도의원들이 절대보전지역 변경동의안을 날치기와 파행으로 통과시켰다.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한나라당(새나라당)의 구성지·허진영·한기환·고충홍·하민철·오종훈·강문철·김미자·양승문·박명택·한영호·김완근·신관홍·임문범·양대성·고봉식·강원철·김수남·장동훈·김순효 의원과, 무소속의 김도웅 의원,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선됐지만 탈당해 당적을 갖고 있지 않던 강창식 의원, 민주당(민주통합당) 김행담 의원, 교육의원이었던 강무중 의원. 그날 날치기 통과 이후 도의회는 더 이상 해군기지 문제에 있어 어떠한 주도권도 잡을 수 없게 됐으며, 제주도정과 함께 정부와 해군에게서 팽(烹) 당했다. 도의회의 결정의 여파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주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CBS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도내 만19세 이상 성인 2100명을 대상으로 지난 3월 25일 해군기지 관련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했다. 2007년 이후 정부의 해군기지 선정과정과 추진방식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5.8%가 ‘문제가 있다’고 답했고, ‘문제가 없었다’는 응답은 22.3%, 무응답자는 21.9% 였다. 특히 보수 성향의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35.9%, 자유선진당은 지지자의 76.3%, 국민생각 지지자의 51.1%가 ‘문제 있다’고 답했다. 6년 전부터 강정마을회가 꾸준히 제기해 온 민주적인 절차상의 문제점이 있음에 도민 상당수가 동의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제주해군기지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서 해군이 주장하는 해군기지로 건설해야 한다는 응답은 14.7%에 불과하고, 52.2%가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을 선택했다. 이는 해군이 얼마나 민심을 잃었는지 반증하고 있다. 해군기지 내 15만t급 크루즈선 입출항 검증에 대해서는 60%가 찬성했고, 반대는 18.5%, 무응답은 20.7%였다. 특히 ‘검증을 위해 해군기지 공사를 일시 중단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46.9%가 ‘일시중단’, ‘계속 진행’은 33.9%였다. 제주도의 공사 중지 행정명령절차 평가에 대해서는 48.2%가 ‘잘한 일’, 26.4%는 ’잘못한 일‘이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이 원하는 명확한 검증에 대해서는 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해군이 계속 연기하며 피해가고 있는 형국이며, 특히 해군은 여론과 상황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법을 어기면서까지 공사만을 고집하고 있으며, 경찰의 강제진압과 도청 앞에서의 공무원들의 무차별적 폭압 또한 민심과 괴리가 있는 형국이다.

무책임한 김태환 전 도지사와 제8대 도의회의 민심에 반한 결정은 6년간의 제주도의 성장동력을 논쟁으로 휘말리게 했다. 특히 제주도의 자존감마저 상실하게 만든 선동의 후합의는 1%의 제주도는 중앙정부에 의해 무시당하며서도 어떠한 행정행위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6년간의 강정마을 주민들의 피눈물과 제주와 강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무기력감과 상실감으로 채워버린 원인은 무능력한 정치와 관련을 맺을 수 밖에 없다. 4월 11일은 총선이다. 다시금 상실감과 무력감이 아니라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제주도의 대표를 뽑는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의미를 강정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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