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의 또 다른 세상 읽기] 강정홍 / 언론인

▲ 강정홍

지역사회의 발전은 ‘자연적 질서’에 의해 저절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역사회발전은 ‘지역주민의 능동적 행위’라는 역동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이때 얼마나 지혜롭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발전은 좋아질 수도 있고, 반면에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주민의 능동적 행위’가 바로 ‘제주의 힘’입니다. 그것이 변함없는 우리의 발전 동력입니다. 발전이란 궁극적으로 개인적 가치들의 반영임을 전제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제주의 힘’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능력의 총화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역사회 발전의 담지자는 지역주민입니다. 그들이 바로 능력을 키워야 할 ‘당사자’입니다. 그러나 당사자도 당사자 나름입니다. 당사자의 삶의 지평을 놓치지 않아야 그 본래의 특성이 온전하게 드러납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당사자는 포괄적입니다. 누구를 배척하거나 분리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서 ‘당사자’를 거론하는 것은 한 둘 돌출된 사람을 내세워 마치 그것이 ‘제주의 힘’인양 감정적으로 안주하기보다는, 지금은 비록 힘은 미미하지만, 오히려 역사적으로 ‘제주’라는 특정한 생활공간 속에서 활동하는, 일정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당사자’를 상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따져야 합니다. ‘지방권력’에 기생해, 지역사회를 마치 ‘자기 자신의 태도와 선호체계를 가진 개인들이 끼리끼리 만나는 장소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 어떤 자리에 있든, 오늘의 당사자는 아닙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그들은 오늘 우리의 문제에 있어 ‘방관자’일 뿐입니다.

그들이 바로 지역사회의 물을 흐려 놓습니다. 그들이 노리는 건 출세의 또 다른 발판입니다. 그래서 지역사회를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듯’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지방권력’의 필요에 따라 급기야 ‘패거리’가 등장하고, 그것이 ‘너와 나를 가르는 또 하나의 경계’로 작용합니다. 그런 ‘유쾌하지 못한 경험’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쇠퇴를 촉진합니다.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킵니다. 같은 범주 안에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한 수 접어주고, 다른 범주 안의 사람들은 이유없이 따돌리는, 그것은 한마디로 ‘파당적 연결망’입니다. 그것은 개인적 관계망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내밀한 영역’을 형성하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그 연줄은 지역사회의 공적제도를 대체하려는 구조적 관성을 갖습니다. 한번 형성되면 좀처럼 바꿔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코드’에 의한 숙명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그 지배력을 강화합니다. 선거철만 되면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끼리끼리 모이고 작당하고…. 그건 음험합니다. 협잡의 탯줄입니다. 우리 지역사회의 온갖 병폐가 바로 그것에서 비롯됩니다.

그런 연결망으로는 지역사회가 발전될 수 없습니다. 그들의 ‘힘’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지역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내밀한 영역의 힘보다는, 공공영역이 광범위하게 성립되고, 그 힘이 강화돼야 합니다. 그것은 사적인 이익과 공적인 이익이 일관된 안목으로 볼 수 있는 명증화된 사회공간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그 힘입니다. 주제넘은 소리 같지만, 어쩌면 우리고장은 그런 면에서 아직도 ‘기대이하’인지 모릅니다.

지역주민의 힘으로 그 내밀한 영역을 깨뜨려야 합니다. 공공영역에 대한 공연한 불신과, 그런 명증화된 공간을 끼리끼리로 대체하려는 그 구조적 관성을 허물어야 합니다. 거칠게 표현해서 혁명에 준하는 창조적 탈주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힘’이 강화돼야 합니다. 시민단체의 힘을 키우는 것도 그 한 방법입니다.

발을 딛고선 자리가 흔들리지 않아야 멀리 볼 수 있고,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당사자인 ‘지역주민의 힘’이 그 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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