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며칠전 한 독자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날마다 해군기지 기사로 지면을 도배하니 지겨워서 신문을 못보시겠다”면서 “신문의 논조가 있겠지만,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독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충고도 해주셨습니다.

충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독자님과 다른 몇가지 생각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기자생활 25년차인 저는 지역신문은 그 사회의 거울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북하고 불편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들추어내서 지역사회 공론의 장을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금은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한 소통의 장이 돼야 한다고 말입니다. 저는 또한 신문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생산적인 비판이라고 배웠습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 불순한 의도가 담긴 비판이 아니라, 진실의 ‘맨얼굴’을 찾아내고 시시비비를 가려 최소한의 상식과 공공의 가치가 살아숨쉬는 사회로 가는 밑거름이 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몇개면이 됐든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이슈를 중심으로 신문 지면을 꾸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봅니다.

정체모를 뉴세븐원더스(N7W)재단 이사장 버나드 웨버가 만든 사기업 뉴오픈월드코퍼레이션(NOWC)이 벌인 돈벌이 캠페인에 수백억원의 혈세를 탕진한 세계 7대 자연경관이, 검증되지 않은 국가안보 명분을 내세워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과 평화·환경의 제주 미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국민들을 짓밟는 해군기지가 그러합니다.

저는 해군기지에서 이명박 정권의 ‘맨얼굴’을 봅니다. 국가의 주인이자 권력의 원천인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국민들을 억누르고 짓밟는,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지막지한 욕망입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도 영해도 아닌, 중국과 배타적경제수역(EEZ)이 중첩되는 수중암초 이어도에서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케케묵은 안보논리와 색깔 씌우기로 4·11국회의원 총선과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재미를 보려는 ‘꼼수’도 숨어있지요. 중국 외교부도 이어도와 관련한 영토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외교적 협상으로 풀어야 할 문제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는데도 말입니다. 경찰 공권력을 앞세워 공사를 강행해 국회의원 선거 이전에 돌이킬수 없게 확실하게 ‘말뚝’을 박아서 ‘몸집불리기’ 욕심을 채우려는 국방부와 해군, 국가를 넘나들며 이익을 챙기는데 여념이 없는 군산토복합체(military-industrial-constructive complex)의 이해관계도 그 배경에 있음을 읽는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해군기지는 국민들이 잠시 빌려준 권한을 행사하는 정부가 스스로를 국가인양 착각하며, 주인인 국민들을 억압하는 민주주의의 비극의 현장입니다. 여기엔 최소한의 상식과 민주주의적 절차, 평화·인권·환경이라는 인류보편적인 가치들이 자리할 틈이 없습니다. 그들은 1050명의 강정마을 유권자 가운데 고작 87명의 박수로 이뤄진 입지선정에서부터 법원에서 잘못이 확인된 국방·군사시설 계획 승인, 부실덩어리 환경영향평가와 협의내용 미이행 등 절차와 과정상의 숱한 잘못에 눈을 감고 환경에도 문제가 없다고 떠듭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하고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결정된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의 핵심인 15만t급 크루즈선 2척 동시접안은 고사하고 대형 군함도 입출항이 어려운 것으로 드러나자, 국방부 단독으로 시뮬레이션을 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박박 우기면서 설계 재검증과 공유수면 매립면허 취소 사전예고 및 공사중지 등 제주도지방정부의 요구도 철저히 무시했지요. 지난 23일엔 제주도가 국무총리실과 국방부 시뮬레이션을 재검증하기로 합의했지만, 해군은 보란듯이 강정 구럼비바위 발파작업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민일보가 해군기지 문제에 천착하는 또다른 이유는 제주와 대한민국의 미래, 그리고 후세에 대한 부담 때문입니다. 만일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이지스체계로 중무장한 구축함을 비롯한 기동전단과 잠수함전대 등이 이어도 등지에서 중국과 대치하거나,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해군기지를 이용해서 중국 봉쇄에 나서 경제적·군사적 충돌이 빚어진다면 그 결과는 상상만으로 끔찍합니다. 남방해역 해상교통로가 봉쇄되는 초유의 사태도 배제할수 없게 되지요.

7000억원이 투입되는 화순항 해경 전용부두나 확장이 이뤄질 제주항 전용부두를 해군 기항지로 활용한다면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하지 않고 국가안보 유지 목적을 달성할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1조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해군기지를 만들고, 5년간 6조5000억원이 투입되고 연간 수백억원의 운영비가 드는 이어도·독도함대를 창설해 제주를 동아시아 신냉전의 화약고로 만들겠다는 것이 과연 국가안보에 진정한 도움이 되는지, 후세들이 져야할 위험부담은 어찌할지 묻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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