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정보공개센터 소장>

우리나라는 베끼기 천국이다. 가수들의 표절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교수들의 표절문제도 언론의 단골메뉴이다. 표절문제가 나오면 누가 원조인지를 따지게 된다. 같은 음식을 파는 비슷비슷한 이름의 식당들이 누가 ‘원조’ 인지를 다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베끼기는 정책의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을 보면, 다른 나라에서 베껴오는 경우들이 많다. 심지어 법률도 다른 나라의 법률을 베껴오다시피 해서 만들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다른 지역에서 나오는 좋은 정책이 있으면 베끼기 바쁘다.
 

무분별한 베끼기가 문제


물론 정책 베끼기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베껴온 정책이 잘 들어맞아서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자기 나라, 자기 지역에 잘 맞지 않는 정책을 무분별하게 베껴오면 성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래서 정책의 영역에서는 베껴도 잘 베끼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앞 다투어 베끼는 것 중에 하나가 걷기여행용 길을 만드는 것이다. 00산 둘레길, 00마실길, 00옛길, 00숲길 등등... 걷기여행용 길은 전국 곳곳에서 생기고 있다. 이 수많은 길들 중에서 원조 격인 길은 물론 ‘제주올레’이다. 강화도에서는 아예 강화올레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유사품이 많아지면 ‘원조’에게 불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유사품을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원조’의 가치는 더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식당 중에서 꼭 ‘원조’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국에 수많은 걷기 여행길 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그 원조 격인 제주올레의 가치는 더욱 올라갈 수 있다. ‘원조’로서의 맛과 품격을 유지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사실 ‘올레’라는 말 자체가 큰 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골목을 의미하는 제주말인 탓에, 다른 지역에서 올레가 많이 생기면 생길수록 ‘제주올레’는 더욱 동경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제주에 맞는 원조 더 만들어 가야


육지에서 나고 자랐으며 제주와의 인연은 상대적으로 짧은 필자는 그런 점을 많이 느낀다. 제주 올레가 유명해진 이후에 필자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제주하면 ‘올레’를 얘기한다. 20대도, 50대도 ‘올레’의 원조인 제주올레를 걷고 싶어 한다.

이런 ‘제주올레’의 사례를 좀 더 일반화시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제주의 경우에도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의 정책을 많이 베껴 왔다. 좋은 말로 벤치마킹이라고 하지만, 제주에 잘 맞는 것인지가 의심스러운 정책도 있었다. 사실 제주가 베낄 수 있는 정책이면 다른 지역에서도 못 베낄 이유가 없다. 이처럼 많은 지역들이 같은 것을 동시에 베끼다보면 차별성도 없고 성과도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잘 베껴도 베끼는 것은 ‘원조’를 만드는 것만은 못하다. 그래서 지역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원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만든 ‘원조’를 잘 가꾸어 가는 것이다. 그게 제주올레의 경험이 시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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