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의 또 다른 세상 읽기] 강정홍 / 언론인

▲ 강정홍

‘미래를 위해’ 그냥 덮자고 한다. 지역사회에 분란이 일 때마다 그런 주장이 설득력 있게 대두된다. 그래서 눈을 감아버린다. 절차적 민주주의쯤 좀 제약되어도, 심지어 어느 정도의 부패마저 그냥 넘어가려 한다. 내면적 가치와 인간다움이 좀 망가지더라도, 당장 경제적 이익만 생긴다면, 눈에 보이는 허물마저 외면하고자 한다. 어디 그뿐인가. 오히려 그것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간 ‘지역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과연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일까.

물론 그런 주장에도 일정부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우리는 지금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 그 변화를 창조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도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힘을 합쳐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 우리의 상황이다. 그래서 미주알고주알 캐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극히 낭비적이다. 우리는 지금 그처럼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지역사회에는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반드시 걸어야 할 정도(正道)가 있다. 물론 그 길을 걷는 건 고통스럽다. 이때 만일 그 길을 걷는 게 고통스럽다고 하여 손쉬운 방법만을 오로지 추구할 경우, 단언컨대 우리에게 바람직한 미래는 오지 않는다.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지역주민들의 열망이 ‘목적이 아닌 단순한 도구’로 취급되고, 그것이 수단으로 타성화 되면,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듯, 지역사회의 안전성과 건강성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탈법과 부조리도 바로 그걸 말해주고 있다.

미래는 그냥 오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 속에 있다. 그 속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우느냐 하는 우리의 기획과 노력에 따라 내일을 주름잡아 늘릴 수 있고 줄일 수 있다. 미래는 이미 현재 속에 들어와 있다. 이렇듯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현재’를 근거로 하여 창조적으로 규정될 시간이다.

우리의 의지는 바로 현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의 총합이다. 그것은 사실들의 감각을 거쳐 가면서 우리의 마음에 남겨놓은 흔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봐야 한다. ‘제주의 바람직한 미래를 열망하는 우리의 의지’가 마치 미래를 위해 조화를 이루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그게 그렇게 그려지는 것은 언어적인 문제일 뿐, 사실은 무한한 감각의 총합이다. 그만큼 복합적이다. 거기엔 현재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의 사고(思考)와 느낌과 감정이 어우러져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건 우리의 자화상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진적으로 그것에 맞게끔 미래를 기획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존하는 지역사회는 이렇듯 우리의 의지에 따라 창조된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에 의해 입체적으로 형태를 부여하고 가치를 확인하는 유기적 과정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자명하다. 현재는 미래를 위한 발판이다. 발을 딛고선 발판이 튼튼해야 좀 더 멀리 도약할 수 있듯이, ‘제주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제주의 현재’를 잘 꾸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를 제대로 살아야 한다. ‘정의로운 제주’를 위해, 밝힐 것은 반드시 밝히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누군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미래를 위해 그냥 덮자는 의견은 한낱 미봉책일 따름이다.

현재를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책임의 감정’이 살아 있어야 한다. 책임의 감정에 구속될수록 ‘우리의 현재’는 튼튼해진다. 그러나 책임의 감정은 그저 단순하게 존재하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책임을 강조할 때면 나는 항상 도덕적 신념과 의무를 앞세운다. 그러나 신념은 진실과 일치할 때 빛을 발한다. 그 신념이 진실에서 동떨어질 때 편견을 낳는다. 어떤 대상에 대한 감정적 고착도 그 한 형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신념과 의무는 모든 사람들의 개별적 행위의 의지 속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책임의 근거는 행위의 결과에만 있지 않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어떤 행위가 지역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쳤는가 하는 인과성은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과 어쩌면 별개의 문제인지 모른다. 책임의 근거는 오히려 행위의 과정에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책임의 기초적 원형’이다. 그동안 지방행정을 맡은 사람들의 책임이 강조돼온 이유도 그 ‘책임의 감정’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의제결정의 감정적 요소로 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리석게 오늘도 꿈을 꾼다. 우리 지역사회가 완전히 정의롭게 될 수 있다는…. 그게 미래를 위해 내 안에 깃든 헛된 기대와 유혹을 이겨내는 저항의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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