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임 기자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의 일대기를 영화로 봤다. 지난 일요일 새벽, 무작정 TV속 영화보기를 검색하다 눈에 들어온 것이 <선택>이었다. 문득 비전향수의 ‘선택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김선명은 44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1995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다. 2개월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형제들은 그를 불편해하며 만나주지 않는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송되지만 그가 꿈꿨던 세상은 아닐 듯 했다.

어느 시절엔 벽을 두드리며 소식을 주고받던 정겨운 ‘동지’들이 있었다. 그러나 비전향수 전담반장의 회유와 폭력을 견디지 못한 많은 동지들이 전향서를 쓰고 떠나간다. 심지굳은 이들도 자살과 정신을 놓아버리는 것으로 현실을 등지고, 김선명은 ‘혼자’다.

영화를 보며 괴로웠던 것은 말년의 김선명이 그래서 얻은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전향을 거부하고 북송됐지만 오래전 그가 꿈꾸었던 세상과 지금의 북한이 같을 지 쉬 동의되지 않았다. 이념이 삶보다 중요한 것 같지도 않았다.

꿈.

1951년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있다는 말에 공산당원이 된 김선명은 유엔군 포로로 붙잡힌 뒤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1995년까지 여러 교소도를 전전했다. 모친을 안았을 때 이미 그는 일흔을 넘어 있었다.

김선명은 출소 후 인터뷰에서 “내가 지키려 했던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었다”고 말했다. 내용없는 반공과 천박한 자유민주주의를 명분으로 0.7평의 공간에서 지난 44년간 벌어진 폭력을 받아들 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김선명은 “내가 타협할 수 없었던 것은 폭력이었다. 폭력에 굴복하면 그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과 공범이 된다”고 말했다. 감옥의 안과 밖 차이에 대해 “작은 형무소에서 큰 형무소로 나온 것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념의 전사’는 분명 아니었다.

일요일 새벽, 영화를 보고 마음이 우울해졌다. 평생을 할애해 지불한 기회비용에 비해 그의 말년이 그다지 해피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다. 게다가 내가 알고 있던 이념의 전사가 사실은 이념이 아닌 ‘삶을 선택했었다’는 사실도 이제서야 알고 놀라웠다.

언론인 남재일의 말을 빌리면 세상에는 대단하지만 아무것도 안 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의 대단한 사연은 언제나 11월의 비(사람들은 11월을 비로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처럼 스쳐간다.

영화는 패배할 줄 알면서도 돌아설 수 없는 순간을 살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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