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진 기자

[제주도민일보 김성진 기자]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세모는 좀 더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제5의 계절인지도 모릅니다. 새해의 사색이 대체로 정월달 싸늘한 추위처럼 날카롭기가 칼 끝 같다면 세모의 그것은 저녁의 안온함과 더불어 지난 일들에 대해 그윽한 감회를 안겨 주는 온돌방인 듯 합니다.

새해가 겨울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까닭은 낡은 것들이 겨울을 건너지 못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낡은 것으로부터의 이별이 새로움의 한 조건이고 보면 칼날 같은 추위가 낡은 것들을 여지없이 잘라버리는 겨울의 한복판에 정월 초하루가 자리 잡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이따금 중학교 때의 시험장 모습과 미술시간을 꿈꿉니다. 꿈에서 보는 시험장은 언제나 초조하고 불안한 분위기로 가득찬 곳입니다. 시험시간에 늦어 아무도 없는 운동장과 긴 복도를 부랴부랴 뛰어 갑니다. 교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유리창 너머 급우들은 제 시험지에 얼굴을 파묻고 있습니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교실 밖을 서성이고 있을 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준비물을 미처 챙기지 못한 상태에서 맞는 미술시간은 그야말로 가시방석입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초조함이 온몸을 엄습해옵니다. 그러다 문득 잠이 깨면 30년도 더 지난 아득한 옛날의 기억입니다. 30년이 더 된 옛일이 지금도 가끔 꿈이 되어 가위 누르는 것을 보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누르는 시험의 무게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를 또다시 느끼게 합니다. 얼마 전 고입 선발시험을 치른 중학생들의 마음은 그 동안 어떠했을까요.

내가 하루에 백번을 웃는다면 거기에서 아흔 아홉 번은 내 아이 때문입니다. 여섯 살 아이의 수정 같은 눈을 반짝이면서 조그만 입으로 나에게 재잘거리는 걸 보고 있으면…웃을 때 벌어지는 볼록한 코와 거기에 붙어 있는 작고 귀여운 콧구멍을 보고 있으면…어른나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아이나라로 돌아와 있는 것 같은 최면에 빠집니다. 앞으로의 이 아이 세상은 나의 옛날과 같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는 것을 이상으로 삼지 않고, 즐기며 사는 그런 세상을 그려봅니다.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누구나 잘 아는 구절이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불현 듯 한해의 끝자락에 이 구절이 머릿속을 휘감는 건 긴 세월동안 이를 실행해 보지도 못한 자책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행복과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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