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금종 / 문화활동가

▲ 지금종

슬로시티(Slow City) 확산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1999년, 이탈리아의 그레베 인 끼안띠 등 4개의 작은 도시 시장들이 모여 슬로시티를 선언하면서 시작된 것이 2011년 현재 24개국 147개 도시가 국제인증을 받아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슬로시티(Slow City)는 이탈리아어 치타슬로(cittaslow)의 영어식 표현으로, 전통과 자연생태를 슬기롭게 보전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기반으로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해 나가는 도시라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전남의 담양군 창평면 삼지내마을·장흥군 유치면·완도군 청산도·신안군 증도를 필두로 경남 하동군 악양면·충남 예산군 대흥면·전주 한옥마을·남양주시 조안면·청송군 부동면·파천면·상주시 함창읍·이안면 등 열 곳이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놀라운 것은 슬로시티가 가져온 효과다. 운동의 발상지인 그레베 인 끼안띠의 경우, 모든 주민이 직업을 갖고 있고 이탈리아의 중소도시 평균보다 훨씬 높은 소득 수준을 보이며, 범죄율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도시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관광객 증가 효과는 두드러진다. 지난 2007년 슬로시티로 지정된 증도 등 전라남도 슬로시티 4곳은 3년 만에 관광객이 평균 약 4.2배 증가했다. 담양군 창평면의 경우는 2007년 5000명에서 2010년 7만2061명으로 무려 14.4배 증가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슬로시티 인증이 지역 인지도 제고와 관광객 유치로 연결된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물론 슬로시티를 관광객 증가의 수단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슬로시티의 궁극적 목적은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슬로시티의 목표는 지역문화를 보존·활성화시키면서 세계화의 긍정적 측면들을 활용해 현재의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공동체의 정신과 정체성을 유지, 발전하는 것이다. 또 ‘느림’을 기본 철학으로 5가지 항목을 그 행동 요령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연생태의 보호,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 제철 식재료로 만든 슬로푸드,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특산물·공예품의 보호, 지역민의 적극적인 참여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슬로시티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제주도만큼 슬로시티에 적합한 지역이 없을 것이다. 청정하고 아름다운 자연생태, 독특한 전통문화 등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은 과제는 행정의 정책적 노력과 주민의 자발적 의지로 풀어야 할 것이다. 슬로시티 인증을 위해서는 대형마트나 패스트푸드점이 없어야 하고, 전통문화 보유, 유기농법에 의한 생산과 소비의 활성화, 지역커뮤니티 운동 존재 여부, 도시환경과 역사 보존 등 여러 항목의 기준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구 5만 명 이하 지역만 인증을 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인증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지역을 선별해 우선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슬로시티를 추진하는 지역엔 사생활 침해, 지나친 상업화에 따른 우려 등이 늘 뒤따른다. 또 관광이 목적이냐? 진정한 슬로시티냐? 하는 근본적 방향 설정에 관해서도 논쟁이 치열하다.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시의 경우도 “관광객만 들끓는다”는 의견과 “도시에 활기가 넘쳐 좋다”는 의견이 대립된 적이 있다고 한다.

명분과 실리를 함께 얻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역시 성패는 올바른 철학과 그에 따른 정책 추진 능력에 달려 있다. 대도시에 예속된 경제체제를 거부하고, 슬로시티라는 대안적 미래비전을 제시한 ‘그레베 인 끼안띠’의 전 시장 파울로 사투르니니(Paolo Saturnini)와 같은 올바른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무한경쟁과 물질 중심적 삶을 벗어나 여유 있고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점점 커지고 있다. 머지않아 이러한 욕망들이 우리 삶의 패러다임을 바꿀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슬로 시티, 슬로 라이프를 통해 제주의 미래 비전을 다시 준비해야 할 때이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