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희 <전 대통령비서실 노동고용정책 비서관>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비정규직 규모는 550만 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2만4000명 증가하고 있다. 최근 몇년 추이를 보면 비정규직의 규모는 540∼580만 명 정도로서 임금을 받고 일하는 전체 근로자 중 1/3 정도이다. 이들의 시간당 임금수준은 정규직의 70% 전후이며 퇴직금, 상여금 등 근로복지나 고용보험,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수혜율은 정규직 근로자의 절반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가난과 비정규직의 중복
 

이러한 격차는 개개인의 생산성, 근속년수 등의 차인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별도의 분석에 의하면 임금격차 중 20% 내외는 이러한 합리적인 격차 이외의 차별에 의한 경우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차별은 근로복지, 부가급부 등에서 더욱 심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비정규직의 문제가 소규모 사업장, 여성, 저학력자 등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70% 정도가 3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 있고 여성근로자의 경우 비정규직이 41.6%(남성의 경우 26.8%)를 차지하며 중졸이하 저학력자의 경우는 58%가 비정규직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경우 비정규직의 문제는 그 규모가 많을 뿐만 아니라 좀처럼 줄어들고 있지 않으며, 차별이 심하고 특히 이들이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가난한 노동자들의 문제의 핵심이 비정규직의 차별의 문제와 대부분 겹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임시적 일자리 등 비정규직 일자리가 더 나은 일자리로 나아가는 가교(bridge) 역할이 아닌 함정(trap), 결국 빈곤의 고착화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이동률은 15% 정도로 OECD 선진국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합리적 비정규직 운용이 중요
 

그렇다면, 이러한 비정규직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여야 할까. 비정규직을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이 대안인가. 고용의 유연화와 다양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이기에, 비정규직도 하나의 자연스러운 고용형태로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관건은 비정규직의 존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해소하고 합리적으로 이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그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현재 시행되고 있는 비정규직 관련법은 비정규직을 불합리한 차별과 남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고 본다. 다만, 이를 뒷받침하고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강구되어야 한다. 공정한 하도급거래를 유도하고, 현장의 근로감독을 강화하며 차별시정위원회를 내실화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

하지만 차별해소는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비정규 근로자들이 더 나은 일자리로 옮기거나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게 필요하다. 비정규직의 상당수가 중소기업 근로자, 여성·저학력 근로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실제 비정규직의 직업훈련 참여율은 정규직의 2/3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직업훈련의 격차는 생산성 격차로 이어지고 임금, 근로조건 등의 구조적 격차로 굳어질 수 있다.

몇 년 전 정부는 종래 사업주를 통하여 지원하던 훈련시스템에서 탈피하여 비정규 근로자에게 직접 직업훈련 선택권을 부여하여 그들이 원하는 훈련을 필요한 때에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근로자 능력개발카드제를 도입하였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비정규근로자들이 이 제도를 이용하여 직업훈련을 받고 있는데, 이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그간 직업훈련을 받고자 하는 의욕이 많았으나 기회가 적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타 훈련에서도 비정규직에 대한 우대지원, 훈련기간 중 생계비 지원, 언제 어디서나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e-learning 훈련 등 비정규직의 능력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방안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이를 적극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의 양보와 배려도 필요하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단체협약상 과보호와 중소하청업체로의 부담 전가는 비정규직 보호와 차별해소 여지를 좁히는 것이다. 경영계도 과거의 관행을 탈피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과 경영전략을 가지고 사람을 키워야 하며 중소협력업체의 경쟁력강화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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