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림 기자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인기가 식을줄을 모른다. 한글을 만들어 내려는 세종과,문자를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해 온 지배층의 싸움이 치열해 흥미를 자극한다.

밀본과 사대부들은 문자를 읽고 쓰는 것으로 자신들의 신분과 이권을 유지한다. 그들에게 맞서는 세종의 한글은 바로 모든 백성들이 말을 익혀 윗것들과의 벽을 허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시대는 다르지만,특정 집단이 무언가를 독점하고 지배층의 특권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를 때,군주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그 중요성에 대해 고찰 해 볼 수 있게하는 대목이다.

한글창제는 조선의 어떤 왕도 취할 수 없었던 ‘대왕’이라는 호칭을 얻게 해 주었다. 그러한 세종이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백성을 무서워 한다. 세종은 만인의 위에 서 있는 절대자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이의 재산도 지위도 모두 마음대로 취하고 사라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백성이 무섭다. 살려달라는 백성들의 말에 부들부들 떨며 뒤로 물러서고,하루에 두 시간도 잠을 이루지 못하며 창제한 한글이 백성의 마음에 들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역병 지역을 돌아다니고,대신들과 맞서 싸우고,수많은 발명품을 만들면서도 오직 백성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온 힘을 쏟는다.

이러한 그의 고뇌에 함께 괴로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영웅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만들어지고 키워진 소중한 가치들이 너무나 쉽게 무시당하는 지금의 현실 때문이다.

영하의 날씨에 거침없는 물대포가 거리를 점령하는 시대,아이들의 역사교육 자료를 편향된 시각으로 은폐·조작해 집필하는 시대,작은 해안 마을의 외침 정도는 무참히 짓밟을 수 있는 시대,국민의 눈과 귀를 누군가의 입맛대로 바꿀 수 있는 시대,많은 이들의 엄청난 희생을 대가로 민주주의를 얻었지만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장식으로 치장된 독재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확실히 불행하다.

그래서 더욱 세종이 그립다. 백성 무서운 것을 알았던 지도자,저잣거리에 가서 막걸리나 마시고 일일이 악수하는 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왕이란 신분을 벗어 던지고 백성들과 마음을 터놓고 부대끼며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려는 지도자,권력이 품고 있는 폭력의 위험함을 겁내하며 결코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던 마음을 가진 지도자,‘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나를 믿고 함께 가자’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도자에게 절망하고,누굴 믿고 따라야 할지 암담한 지금,이런 왕이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 희망을 가져본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에겐 너무나도 세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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