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은 기자
[제주도민일보 김동은 기자] 몇해 전 영화인들이 삭발까지 감행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영화인들은 하던 일을 내팽개 치고 시위장으로 하나둘씩 모였다. 이들은 왜 그랬어야만 했을까?

스크린쿼터라는 단어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대로 해석하면 스크린은 영화를 뜻하며, 쿼터는 할당량을 뜻한다. 스크린쿼터는 말 그대로 총 상영일수 중 일정 일수 이상을 자국영화를 상영하는 제도다. 무분별한 헐리우드 영화의 유입으로부터 국내 영상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1966년부터 시행해 오고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스크린쿼터도 무수한 변화를 거쳤다. 1966년에는 연간 90일 이상의 의무상영일수 준수를 의무화했고, 1970년에는 30일로 축소됐다가 1985년에 다시 146일로 늘어나면서 한층 강력해졌다.

그러나 지난 2006년 7월 1일부터 정부가 기존 146일의 스크린쿼터제가 미국과의 협정에 있어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이유로 미국 측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면서 절반인 현행 73일로 축소됐다.

이후 한국영화 관객 수는 감소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 헐리우드 영화의 점유율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스크린쿼터가 축소된 이후 2007년부터 2009년 사이 한국영화 평균 관객 수는 축소 이전에 비해 40% 가량이나 감소했다.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은 2006년 63.8%에서 스크린터쿼제가 축소된 이후 2007년 50%, 2008년 42.1%, 2009년 48.8%, 지난해에는 46.5% 수준에 머물렀다.

앞으로는 더 깜깜하다. 래칫조항(역진방지조항)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래칫조항으로 현행 의무상영일수인 73일보다 축소는 가능해도 이보다 늘릴 수는 없게 됐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이창동·봉준호·박찬욱 같은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감독이 탄생하고 있고, 또 지난 2007년에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영화의 '양'만이 아닌 '질'적인 측면에서도 헐리우드 영화에 전혀 뒤질 게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순간의 잘못된 선택은 한국 영화산업에 찬물을 끼 얹고 말았다.

영화계 종사자들이 한국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의 시간은 수십여년 걸렸지만, 한미FTA 비준안을 날치기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몇 분이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IMF로 나라가 흔들리고 어려웠던 시기에 온갖 인종차별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에서 멋진 호투로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겼던 박찬호를.

한국 영화는 앞으로 불리한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불리한 싸움을 시작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머나먼 미국 땅에서 가슴이 뻥 뚫리는 직구로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던 박찬호처럼 한국 영화도 멋진 한방을 날리고 주먹을 쥐는 비상하는 날이 올 것이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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