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국물에 소주나 한 잔 할래요?

[제주도민일보 장정욱 기자]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겨울이니 당연한 것이겠거니 해도 추운 건 사실이다. 제주도는 바람까지 심해서 더욱 춥다던데 처음 맞이하는 제주도의 겨울이 걱정이다.

이렇게 찬바람이 불어오면 항상 생각나는 게 있다. 남들은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를지 몰라 난 그저 따끈한 ‘오뎅’(어묵이란 표현이 바람직하겠지만 사실 오뎅이 더 어울린다) 국물에 소주 한 잔이 첫사랑 얼굴보다 우선한다.

 근 길 언 손 녹여가며 지하철로 향하던 발걸음은 오뎅 국물이 뿜어내는 허연 김에 꼼짝없이 멈춰 서고야 만다.

포장마차. 추운 겨울 시린 바람을 피해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에 가장 만만한 장소다. 천막하나 들추면 실내요 반대로 천막 사이로 고개 삐죽 내밀면 거기가 실외다. 안과 밖의 경계가 얇은 천막 쪼가리 하나에 결정된다. 두꺼운 콘크리트 장벽 속에서만 살던 우리에겐 참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포장마차가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허술한 플라스틱 의자에 턱 하니 걸터앉아 주위를 휙 둘러보면 ‘지지리 궁상’인 이웃들의 모습이다. 어느 한 명 유별난 사람이 없다. 나름 반듯한 모습에 귀티 나는 행색으로 포장마차에 들어왔던 사람도 몇 잔 주거니받거니 하면 우리 ‘꼬락서니’와 다를 바 없다.

옆 테이블에 앉은 ‘만년과장’ 김 과장의 넋두리를 의도치 않게 듣기도 하고, 새로 사귄 남자친구 자랑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예쁜 아가씨의 음성에 피식 웃음 짓기도 한다. 물론 직장상사 ‘뒷담화’에 열을 내는 내 목소리를 그들도 듣겠지. 이러한 불가항력적인 ‘도청’은 ‘나’와 ‘타인’간 경계가 없기에 가능하다.

그렇다. 포장마차에는 경계가 없다. 테이블 사이 ‘벽’이 없고 좌석사이 ‘장막’이 없다. 때론 테이블조차 구분 없이 공유하기도 한다. 얼마나 좋은가. 그동안 나를 보호한답시고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갑옷들을 다 벗어 던질 수 있는 공간이니 말이다.

몇 달 전 서울시가 서울역 노숙자들을 강제퇴거 시킨 일이 있다. 서울시가 그러한 선택을 한데는 많은 이유가 있을게다. 그들의 결정에 옳고 그름의 기준을 누가 제시할 수 있겠는가. 다만 쫓겨난 노숙자들에게도, 쫓아내는 서울시 공무원들에게도 소주 한 잔과 오뎅국물 한 모금 건네고 싶다.

무슨 인연으로 서로가 그런 모습으로 만나게 됐는지 모르지만 노숙인도 사람이고 공무원도 사람 아니던가. 지난 10월 FTA 반대 농민들과 제주시 공무원들의 치열했던 몸싸움도 마찬가지였겠지. 누구를 탓하겠는가. 경계를 허물고 보면 다들 힘없는 서민일 뿐인데.

제주에서 보내는 첫 겨울. 제주도의 포장마차는 어떤 모습의 사람들이 있을까? 그들 틈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싶다. 물론 안주는 ‘오뎅 국물’.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