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임 기자
얼마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라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누군가 대포통장을 만들어 나쁜 짓을 했다는데 그 중 내 명의의 통장이 있다는 것이다.

기계적인 말투에 순간 보이스피싱을 떠올렸지만 함께 연상돼야 할 연변 사투리가 나오지 않아 계속해 전화기 너머로 귀를 기울였다. 내 명의로 만들어진 통장은 2개라고 했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명의를 빌려준 공모자가 될 수 있다며 겁을 주곤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는 내게 덜미를 잡혔다. 꼬치꼬치 캐묻는 내 말투에 화가 난 그가 자신도 모르게 연변 사투리를 조금씩 뱉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전화를 끊고 다시 걸겠다”고 말했다. 그리곤 서울중앙지검으로 전화를 걸어 확인한 결과 예상대로 보이스피싱이었다.순간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 졌다.

다시 하던 일에 집중을 하려는데 문득, 나를 화나게 한 이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전화를 하는 걸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휴대폰을 들어 걸려온 번호를 누르자 결번이다. 내가 속았다면 나에게 큰 피해를 주었을 이에게 나는 전화를 걸어 화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내 이름과 번호를 알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지만 나는 그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모른다. 그는 시스템 저 너머,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저 너머에 있는 건 비단 그 만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조그만 공동체는 늘상 동북아시아의 허브를 꿈꾼다. 슈퍼옆 초등학교는 글로벌 리더를 키우겠다 하고 총선에 출마하는 이들은 ‘세계’와 ‘선진도약’을 이야기한다. 시민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해야 하는 행정과 읍면동조차 80난 노인을 앞에두고 스마트와 네트워킹을 외치는 세상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졸업한 대학의 슬로건도 ‘세계를 △△로, △△를 세계로’였던 것 같다. 

‘구호’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실체나 정체를 따져 알기 힘들다. 무엇이 스마트인지 알지 못하지만 매일매일 스마트해진 물건을 구입하고 제주보단 세계를 더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가.

1969년 미국의 암스트롱은 정말 달에 도착한 것일까. 그가 걸어서 발자욱을 남겼다는 말을 우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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