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공개 vs 밀실…같은 취지 방식은 정반대

제주미술제 주최측, 기자 위주 심사위 구성 결정

공정성 담보 어려운 현실 시사

▲ 모든 기관이 ‘잡음없는 심사’를 원하지만, ‘공정성 확보’라는 동일한 취지를 두고도 일부는 ‘비밀 심사’, 일부는 완전공개, 선택방식이 정반대다.
시민들은 양자 간 방식이 너무 다르다며 기존 심사 관행에 전반적인 검토와 쇄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없음. 제주도민일보 DB.

모든 기관이 ‘잡음없는 심사’를 원하지만, ‘공정성 확보’라는 동일한 취지를 두고도 선택방식은 상이하다. 일부는 ‘비밀 심사’로 사전 로비가능성을 차단하고, 일부는 심사 내용을 모두 공개해 개별 심사위원들에게 공정한 심사를 암묵적으로 촉구한다.

문제는 ‘공정한 심사’라는 주최측의 동일한 취지 상이한 방식이 시민들에게 모두 공감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공개심사가 정석이라면 밀실심사가 지양돼야 하고, 밀실심사가 유익하다면 공개심사가 배제돼야 한다는 것, 한마디로 ‘모순’이라는 말이다.

지난 2일 제주미술제 개막을 앞두고 주최측이 한바탕 고민을 치렀다. 올해 처음 시상하는 ‘미술인상’ 심사를 놓고 누구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해야 할 지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이다.

도내 미술인간 심사를 맡기려니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것 같고, 외부인을 위촉하더라도 초빙 주체와의 친분관계설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미술제 주최측은 급기야 도내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심사위원으로 앉힌다는 데 이사회의 동의를 얻었다. 당시 주최측은 원로화가 1인을 같은 심사위원단에 위촉해 기자들의 비전문성을 보완하는 장치는 마련했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번 사례는 ‘공정한 심사’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심사공정성을 위한 답안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지난 1961년 시작된 제주도문화상은 종종 심사에 이의가 있어왔지만 제주도는 심사위원 명단과 기준 일체를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공정성을 찾는다는 입장이다. 결과에 대한 여론에 심사위원들이 부담을 가질 수 있고 사전에 알려지면 로비 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오랜 제주도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에도 불구, 제주도문화상은 지난해 역시 언론 부문 등에서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반면 같은 제주도가 운영하는 심사체계중 각종 심의위원회는 그 위원 명단을 도청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기존 문화상을 심사하는 도의 입장대로라면 사전 로비의 위험이 따르지만 관련 조례에서 위원 명단 공시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시민들은 보다 더 공정한 심사가 어떤 것인지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

육지부에서도 공정한 심사가 화두다.

올해 대종상영화제 추진위원회는 매년 불거지는 잡음을 없애고 대시민 홍보를 확대하기 위해 영화제 외 직종의 시민을 대상으로 예선 심사를 진행했다.

이는 문화가 전문가들만의 영역은 아니라는 의견까지 반영한 것으로, 18세이상 일반심사위원 50명이 앞서 9월 출품작 49편을 관람하고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등 19개 부문 후보작 29편을 골라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진흥사업 심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심사위원 풀(pool)’ 제도를 도입했다.

영화계에서 추천받아 구성한 122명과 영진위가 추천한 80명 등 총 202명을 대상으로 두고 무작위 추첨을 통해 매번 심사위원단을 구성하는 제도다.

앞서 기존의 소수 심사위원 위촉 방식으로는 심사후 시비를 막기 어렵다는 경험에서 나온 조치다.

대종상 영화제가 시민 참여로, 영화진흥위가 무작위 추첨으로 소수 심사위원에게 집중될 사전 로비를 차단했다면 광주시는 투명한 심사로 관심을 샀다.

지난 10월 광주시와 광주건축단체연합회는 ‘광주 도심재생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며 심사위원과 출품자가 한 자리에 서서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검증하는 내실있는 심사를 진행했다. 시민이 전문가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은 물론이다.

도심 재생은 전문가들의 안목과 함께, 해당 공간에서 살아갈 시민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 1차에 선정된 특선작 출품팀이 심사위원과 시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직접 설명했고, 심사위원단이 그 자리에서 질문을 던지며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는 점도 심사의 객관성을 높이는 한 방법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상의 사례들은 심사내용을 공개하고 많은 이들의 참여를 끌어들이는 것이 공정한 심사를 하는데 보다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공통적으로 들어있다. 반면 여전히 제주와 육지부의 많은 기관들에서는 비공개 심사 관행을 추구하고 있다.

같은 공정성을 내걸고도 서로 다른 심사관행. 도대체 뭐가 맞는 것일까. 취재중 만난 여러 문화·건축계 관계자들은 “제대로 된 심사가 상의 권위를 높이고, 상의 권위는 심사위원의 명성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며 “그러나 많은 기관과 단체에서 매번 심사결과에 의혹이 제기돼도 관행 타파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한번쯤 대회를 치러 본 여러 관계자들은 인재풀이 적은 제주에서는 심사위원 위촉에서부터 결과도출까지 ‘공정한 심사’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한 길이 더욱 험난하다고 말한다. 행정이 제대로 된 심사방식에 대해 고민해 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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