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만난사람-2] 제주장애인연맹 장애여성지원팀 고혜숙 팀장

영화 ‘도가니’ 마음 아파 보지 못해

"너 안경 안썼지만, 난 안경 썼어" 조금 불편할 뿐 일반인과 다를 게 없어

움츠리지 말고

▲ 지난 11일 제주시 이도1동 '제주DPI' 사무실에서 고혜숙 팀장을 만났다.
[제주도민일보 김동은 기자] 영화 ‘도가니’가 개봉되고 장애인 인권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장애인 인권과 국가와 사회의 책임에 대한 물음이 던져지고 있다.

한국장애인연맹 제주DPI는 장애유형을 포괄해 당사자 중심의 인권운동을 펼치기 위해 지역조직으로 출범,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 실현에 역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지난 11일 제주시 이도1동 ‘제주DPI’ 사무실에서 고혜숙 팀장을 만났다.

다음은 고 팀장과의 일문일답.

● 영화 ‘도가니’ 개봉으로 장애인 성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광주 인화학교의 장애인 성폭력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개봉됨에 따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고 최근 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가 장애인 성폭력 실태 조사를 하는 등의 움직임을 일어나고 있다.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는 장애인 활동가 입장에서 영화를 보려 해도 도저히 볼 엄두가 나지 않더라. 그래서 일부러 보지 않았다.

장애인 성폭력 문제는 여성이기 전에 인권의 문제다. 특히 여성 장애인의 경우 무성적존재로 보는 시각들이 많다. 가령 장애인 화장실은 남·여 화장실을 따로 두지 않고 공용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부분들은 장애인 성폭력과 연관해 문제를 키울 수 있는 요소들이다.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있어서 안 될 일이지만 여성 장애인에게는 그런 일이 많다. 특히 지적장애인은 더욱 그러하며 최근에는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들의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여성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의 입장인데 그런 사건이 일어날 때 마다 가슴이 아프다.

최근 이른바 ‘도가니법’으로 불리는 성폭력범죄 처벌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범죄자를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법률안에서 반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항거불능’이라는 단어를 삭제했을 뿐 형법상 강간죄는 그대로 유지됐다. 형법상 강간죄는 폭행 및 협박 사실이 인정돼야 성립되기 때문에 결국 성폭력 피해자가 폭행 또는 협박을 당해 반항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는 오히려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들을 불리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 도내 장애인 편의 시설 현황은.

제주의 장애인 편의시설은 그야말로 열악한 수준이다. 편의시설의 설치도 중요하겠지만 그전에 더 중요한 것은 한 곳을 설치해도 제대로 설치했느냐이다.

가령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를 설치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사로의 기울기이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신경 쓰지 않고 설치할 경우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한 게 되기 때문이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설치가 아니라 장애인들이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 여성장애인의 시각으로 본 편의시설 점검기를 진행하고 있다. 성과와 과제는.

제주장애인연맹에서 3년째 실시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과거에는 비공식으로 진행을 했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편의시설을 점검할 여성참가자를 모집해 실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뚜렷하게 개선되거나 노력하는 게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식개선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시청 인근 모 은행의 경우 과거에는 휠체어 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은행 측은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증진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지만 점검을 통해 시설 증진을 가속화 시킬 수 있었다.

● 장애인들의 대한 인식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어떠한 인식 개선이 필요한 것인가.

장애인들을 위한 법·제도도 중요하고 법 이행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식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법과 인식개선이 동시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편의시설은 꼭 장애인만 이용하는 시설이 아니다. 경사로는 유모차·노인 등도 이용할 수 있고 비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생겨난 것이 유니버셜 디자인이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장애의 유무나 연령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제품, 건축, 환경, 서비스 등을 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그래서 편의시설이 비단 장애인 뿐만 아니라 모두 다 같이 이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유니버셜 디자인 포럼이 열렸는데 전국적으로 유니버셜 디자인의 확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베리어프리라는 장애인 및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 생활에 지장이 되는 물리적인 장애물이나 심리적인 장벽을 없애기 위해 실시하는 운동 역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9월에 열린 장애인 인권 영화제에서는 오른손잡이 뿐만 아니라 왼손잡이도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셜 디자인 물품 등을 전시하기도 했다.

● 도내 장애인 일자리 사업은 활발한가.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장애인 취업률을 살펴보면 수치상으로는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는 단순 수치 일뿐 아직도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장애인들이 많다.

장애인 의무고용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최근 3년간 장애인고용의무사업체 수는 172개나 되지만 고용률은 2.4%에 불과하다.

게다가 도내에는 영세업자가 많기 때문에 장애인이 취업할 만한 회사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장애인의 취업 욕구는 높아지고 있지만 선택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취업률은 30%대에 그치고 있다.

또 장애인 일자리 현황을 보면 단순 노무직, 사무직이 많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로 과거에는 편의시설 부족으로 학교를 가지 못한 장애인이 많기 때문에 전문직 종사자 비율이 현저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능력보다는 기회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 보니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단순한 업무밖에 할 수 없는 사회니까.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장애인의 도움이 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인에게 교육을 받게 하고 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 장애인들의 예술 활동은.

지난달 장애인문예술대상에서 대중예술 분야를 수상한 양정원(지체 2급)씨가 대표적이다. 양정원씨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지만 음악 활동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지역 사회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뿐만 아니라 지역의 대중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2007년에 장애인문화예술 종사 현황에 따르면 장애인 미술가만 1000여명으로 알려졌다. 또한 장애인들은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편이다. 최근에는 장애인들의 문화적 예술 욕구가 커지고 있지만 접근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과거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서 바뀌는 추세이긴 하다. 매년 장애인 인권 영화제를 진행하고 있는데 영화제에 출품하는 작품을 감상할 때 마다 정말 능력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재능이 있는 분들의 경우에는 예술활동의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들을 결합시켜 장애인 취업 확대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또 비장애인들 사이에 진입해 장애인도 좋은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장애인에게 시급한 복지 사업이 있다면.

도내의 특별교통 이동차량이 너무 적다. 도내의 특별교통 이동차량은 법정 40대가 필요하지만 도내에는 5대가 전부다.  게다가 출퇴근용 또는 병원에 갈 때 이용하고 있는데 이용하려면 하루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새벽에 아프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라는 건지.

저상버스도 마찬가지다. 저상버스가 있으면 뭐하나, 불편해서 안타고 있는데.

현재 제주시에 8대가 있고 서귀포시에 2대가 있다. 하지만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거의 없다. 리프트가 도로상황과 전혀 맞지 않고 속도 또한 느리다. 게다가 배차시간도 가령 한시간에 1대 꼴이니 타기가 힘들다.

● 장애인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나.

장애인은 할 수 있게 조금만 도와주면, 할 수 있게 조금만 바꿔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장애인은 장애를 갖고 있지만 그냥 다를 뿐이다. “너는 안경 안썼지만 나는 안경썼어” 그냥 이정도 차이다.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이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단정 지어 버린다. 그런 인식 자체가 장애인을 나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것이다. 혹자는 이제는 장애인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갑갑하다. 변화를 꾀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

● 장애인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장애인 중심이 아닌 모든 사람을 고려하는 부분들이 필요하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장애인이라는 말에 국한하지 말고 모든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 그래서 유니버셜 디자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장애인이 가기 위해 편하게 설치하라는 게 아니라 어른들과 아이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회장님이 그런 말을 자주 하신다. 한 발자국씩 나아가자고. 내가 아무리 얘기하고 떠들어봐야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1cm, 2cm 나아가다 보면 변화는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모든 것이 그렇다. 한번에 바뀌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장애인 활동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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