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악단 발목잡는 2거지악] <1> 행정
‘14년 한 지휘자’ 교체요구 외면 연임 결정

교향악단 단원들이 어렵게 제기한 내부 문제에 제주시가 조용히 귀를 닫았다.

14년째 한 지휘자가 연임하며 악단 내부에서 음악적 질과 관련한 변화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제주시는 1일 지휘자 연임을 결정했다.  

시는 “올해내 제주시장의 결재가 남았다”면서도 “앞서 열린 실적평가위원회와 운영위원회에서 지휘자 역량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와 재위촉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단원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앞으로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례적인 답변을 건넸다.

이런 제주시의 입장이 전해지자 교향악단 전·현 관계자들은 실망과 분노를 드러냈다. 30억원 이상이 매년 투입되는 도민들의 중요 조직을 제주시 스스로 퇴보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제주도립교향악단은 지난 1985년 창단이후 상임지휘자가 1번 바뀌는 데 그쳤다. 현 지휘자는 14년째 한자리다. 문제는 지휘자의 악단 운영 능력. 제주시는 단원들의 지휘자 역량 부족 문제제기에 “조례상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철막’ 행정을 펼치고 있다.

앞서 전·현직 단원들은 현 지휘자의 연습기간과 연습방식을 두고 미흡하고 성의가 부족하다는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또 일부 단원들은 지난 8월 조례 개정으로 지휘자의 재위촉 횟수가 사라진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제주시는 재위촉 기간이 사라진 대신 실적평가위원회가 신설돼 이전보다 더 까다롭게 지휘자 심사가 가능해졌다는 입장이지만 단원들은 몇개월간 수도없이 연습한 곡을 한두번 듣고 지휘자의 진정한 역량 평가가 가능한 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이번에 신설된 실적평가위가 현 지휘자와 가근한 인사로 꾸려져 객관적인 심사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재위촉 과정에 대한 신뢰적 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가운데 시는 단원들이 언론 등을 통해 어렵게 제시한 문제제기에 대해 별다른 대응책이나 수용안없이 “향후 적극적으로 단원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의례적인 말만으로 이번 논란을 매듭짓고 있다.

이는 앞서 본보가 두 차례 보도(‘종신 가능한 조례에 인사도 비밀리’ ‘경기도지사가 ‘구자범’에 손 내민 이유는‘)로 제시한 광주·부산·경기도 시향의 사례와 극명히 대비되는 행보다.

부산시는 지휘자 평가에 단원평가를 삽입하고 있고, 광주시향은 세계적 지휘자 구자범씨를 2년간 채용해 광주라는 도시 이미지를 음악을 통해 알리며 약진했다. 구자범 임기내 6번의 정기연주회가 1800석 모두 매진, 고별연주회에는 입석 100석을 급히 찍어냈음에도 자리가 없어 사람들이 로비에서 대형화면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냈다.

구자범은 이후 올초 김문수 경기지사의 손을 잡았지만 그가 떠난 뒤 광주에는 “구자범이 뿌린 클래식의 홑씨를 광주시 예술인들이 이어가자”는 움직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연봉 등 2년간 2억5000여만원을 투자한 것으로 광주는 ‘예향의 도시’ 이미지를 끌어올렸고, 음악을 모르던 일반 시민들이 클래식의 맛을 알게 됐다는 점에서 여타 문화향유층 및 도시 홍보 사업보다 효과가 컸다는 주장도 나온다.

교향악단 관계자는 “일 만들기 싫어하는 행정의 태도를 이번에도 확인했다”며 “조례나 관례는 최소한의 기준일 뿐 절대 합리화의 기준은 될 수 없다. 결국 손해보는 것은 도민들”이라며 허탈감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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