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영의 문화살롱

만화가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형편없던 미술점수와 상관없이 아주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틈틈이 내가 그리던 만화는 외계인이 지구에서 벌이는 우스운 사건이나 가슴 아픈 상처를 갖고 있는 소녀가 연인을 만나 행복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꿈같은 내용이었지만, 만화에서는 통용되는 상상의 세계였다.

내가 만화가를 꿈꿨던 이유는 만화만큼 서민적이고 행복한 그림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동네마다 몇 군데씩 있던 만화가게에 가면 코흘리개부터 어른들까지 모여 앉아 만화 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동전 몇 개에 좋아하는 만화책을 산처럼 쌓아 놓고 소리 내어 웃어도 흉이 되지 않고, 글자에 서툴러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까치’, ‘둘리’와 같은 코믹만화를 떼고 나면 ‘캔디’, ‘베르사이유의 장미’, ‘바람의 검’같은 순정만화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만화를 보며 한글을 뗐고, 이성에 대해 눈을 떴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도 만화를 좋아한다. 도서관에 가면 만화책만 손에 들고 나오고, 어쩌다 마트를 함께 가도 장을 보는 동안 아이는 서적코너에 앉아 만화를 본다.

‘마법천자문’, ‘WHY?’, ‘영문법원정대’, ‘OO에서 살아남기’… 아이가 읽는 만화책들은 제목부터가 낯설다. 대여할 수 없으니 구매해서 볼 수밖에 없는데, 권 당 가격이 만원을 웃돈다. 거기다 대부분이 20부 이상의 시리즈물이다.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사 주는 데, 한번 읽고 나면 다시 보는 일이 드물다. 학습만화와 게임만화가 대부분이니 감동과 재미가 덜 하기 때문이다. 또래끼리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만화를 통해 얻은 전문지식을 서로 나누거나 새로 등장한 게임 아이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상상의 나래를 펴거나 미지의 누군가를 동경하는 여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늘 만화를 읽은 아이가 뭔가를 그리길래 몰래 훔쳐보았다. 기다란 막대기 위에 얼굴만 있는 주인공과 각종 무기 아이템으로 장식한 캐릭터들이 불꽃 작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살벌한 현대 문명으로 장식된 그림을 보면서 문화의 차이라고 이해하려는데 자꾸 한숨이 새어 나온다.<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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