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농사를 지으면서 편안하게 살아왔던 농민, 강정 바다에서 잡은 고기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어민. 이들이 거리의 투사가 된지 벌써 5년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얘기다.

지난 주말 제주시청 일대에서 해군기지 평화적 해결을 요구하는 ‘제5차 전국시민행동’이 열렸다. 반대측 시민단체와 대학생, 중고교생, 학계 및 정치계 등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를 메웠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이들은 나이 지긋하신 강정마을 어르신들과 이들에 손에 이끌려 온 손자·손녀였다. 얼굴이 검게 그을린 활동가들도 눈에 들어온다. 이들 모두 고생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눈가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 지나가는 시민들로 가득 찬 행사장 천막 주변은 험악한 분위기가 감돈다. 활동가 예닐곱명이 강정마을에서 머물며 일주일 내내 힘들게 만든 인형 탈을 경찰들이 빼앗아갔다.

탈과 연결된 대나무가 흉기로 쓰일 수 있으며 제작한 하회탈이 이명박 대통령을 상징, 정치적 성격을 띠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하회탈은 있지도 않고 다만 강동균 회장 등 구속된 사람들의 얼굴을 형상화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돌려달라는 외침에 경찰들은 외면했다. 지나가는 여고생들이 “경찰 아저씨들 너무해요”라는 말이 터져나왔다. 일부 시민들은 남의 일인 듯 쓰윽 지나치기만 한다. 모든 도민들이 해군기지 반대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이날 행사가 열린 곳은 군중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의 성격을 띤다. 시청 앞은 문화의 거리이자 젊음의 거리다. 강정주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광장을 원했고 도민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국책사업을 추진하며 이토록 오랜 세월 반대에 부딪친 투쟁의 역사가 있을까. 제주해군기지 반대투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민감한 사안이지만 무관심 속에 방치돼 온 것도 사실이다. 이들이 왜 5년째 거리의 투사로 나섰는지 속내를 아는 시민이 몇일지 궁금해졌다.

마을주민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공권력도, 강제연행도 아니다. 과거, 처절한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는 순간이 그랬다. 평범했던 마을주민을 거리의 투사로 내몬 것은 행정당국일까, 해군일까. 이것도 아니라면 도민의 무관심일까.

강정마을은 시민의 힘을 원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해군기지)이 수백년 마을에서 터 잡고 살던 이들을 내쫓으려는 모습에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투쟁의 세월을 깊이 알리 만무한 여중생이, 해군기지 정책토론회 요구서명을 위해 펜을 들었다가 어린나이라 서명이 불가능하다는 말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서는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