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시문학 등단 후, 好學不倦(호학불권)의 삶을 글로 담아

강병철 시인, 제19회 푸른시학상 수상.
강병철 시인, 제19회 푸른시학상 수상.

제 19회 '푸른시학상' 수상자로 강병철 시인이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강병철 시인의 <폭포에서 베틀을 읽다>외 4편을 수상작품으로 선정했다. 시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며 사유와 서정의 카테고리가 공감의 이미지를 끌고 가는 힘이 강하다고 평했다. 또한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 심사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를 이끌어 냈다.

푸른시학상은 한국시문학문인회 위상진 회장이 제정한 문단으로, 52년 전통의 시 전문 문예지월간이다. 시문학의 위상을 드높이고 한국문단으로써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시인에게 기회와 수상의 영광을 안겨다주는 순수한 작품상으로 위상이 높다.

특히, 올해 수상자인 강병철 시인은 2016년 시문학으로 등단하여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강병철 시인은 작품 활동 외에 2012년 제주대학교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하여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인권위원회 위원, 국제펜클럽 투옥작가위원회 위원,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 연구이사, 충남대학교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학교특임교수 등을 역임, 현재 뉴제주일보 논설위원 및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푸른시학상 시상식은 12월 3일 서울 청년문화공간 주동교동 지하다리소극장에서 개최된다.

다음은 제 9회 푸른시학상에 선정된 강병철 시인의 작품이다.

 

#1.폭포에서 베틀을 읽다

-천지연 폭포에서

 

하얀 함성이 펄럭이는 무명천 자

한 방울 한 방울, 물방울로 직조되었다

허공을 가른 햇살의 파동을 날실 삼아

물방울이 씨실이 되어 짜낸 깃발이다

 

암벽 베틀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햇살은 흩날리는 물방울을 안고,

물방울은 햇살에 스며들며

꼬이면 풀고, 풀리면 서로 그러안는다

 

순간은 영원이 되고, 영원은 순간으로

아무도 떼어낼 수 없는 포옹

푸름 속 눈부신 절규로

지축을 향해 맑은 천을 짜나간다

 

허공과 지축을 잇는 무명천의 기도

눈으로만 들을 수 있는 함성

천만리 먼바다까지 짜 내려가

물처럼 살지 못한 이들 눈 감을 때

구름 되어 눈물 흘리겠노라고

 

그 눈물 방울방울 씨실이 되는 날

폭포 되어 돌아오겠노라 펄럭인다.

 

 

#2.천둥 속 들여다보기

 

허공이 북이에요. 북이 찢어지도록 쳐보세요. 잠든 영혼을 위해 북을 쳐주세요. 마음에 활력을 줘야 해요. 강렬한 북채로 허공을 때리면 허공이 찢어지는 섬광에 지구도 잠에서 깨죠. 뇌성이 도달할 때까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온갖 상념의 새들이 날죠. 세상이 더 맑게 보이도록 천둥이 울림을 주고 사람의 땅을 적셔주세요.

그것이 세상을 진동시켜야 하는 이유예요. 때때로 번개 치는 것은 잠든 영혼을 깨우는 거예요. 천둥소리가 울리기까지 누구든지 셈을 하지요. 영혼이 깨는 순간을 기다리며 폭풍우가 바다를 살리듯이 천둥은 진실을 깨워 기르는 비를 몰고 온 땅을 적시는 거예요. 모두 젖을 수 있도록 함께 우는 거예요.

 

 

#3.주상절리 벼랑에 서다

- 서귀포 중문 주상절리

수축의 중심점에 응고된 육각기둥들,

침묵의 모서리가 날 선 검처럼 차갑다

 

서귀포 중문 지삿개 바닷가에서

고래들 노니는 푸른 수평선까지

달려나갈 수 없는 수직의 기다림은

파도에 할퀴어 우는 벼랑의 가슴

 

살아가는 일이 절벽으로 느껴지는 날

파도 소리에 울음 묽혀 울고 싶어

바닷가를 찾아 파도가 되고 싶을 때

주상절리 그 바닷가 벼랑에 선다

 

앞 단추를 후두둑 열어젖히고

아찔한 암벽에 서서 바다를 마시면

거품으로 흩어지는 버리지 못한 꿈들

파도를 따라와 암벽모서리에 부서진다

 

수평선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손길

움츠린 어깨를 포근히 감싸준다.

 

 

#4.구름 따라잡기

 

수천 깃을 세워 허공을 날며 내려다본다

날개 아래 펼쳐진 세상은 모두 나의 것

부러울 것 무엇이랴

날개를 뻗어 더 많은 것들을 끌어당긴다

양 떼가 되었다가 코끼리 떼로 부풀어 올라

이젠 더는 날을 수 없는 몸

모두 버리고 하늘을 떠나야만 할 때다

주룩주룩 눈물이 흐른다

죄다 내려놓고 실컷 울고 나면

빈 가슴이 후련하다

초목들의 여린 등을 토닥여주고

목마른 산야를 적시며 계곡을 돌아

강물 되어 흐르고 흘러 바다에 안긴다

한 방울의 물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신은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가벼운 날개를 그에게 달아주었다.

 

5.용설란(龍舌蘭) 관람기

 

누가 용의 혀를 보았는가?

 

탑동광장 20() 꽃탑이

황록색의 불을 뿜는다

회녹색 혓바닥 가장자리마다

검붉은 가시가 울음을 토해낸다.

 

100년에 한 번 불을 뿜고 죽는다는

세기의 꽃(Century Plant)

그 꽃잎으로 빚은 데킬라(Tequila) 한 잔

그대를 취하게 하리라

 

살아있는 나날 동안

한번 보기도 어려운 꽃,

 

파도가 넘실대던 바다를 메운 땅 위

향기를 토해내듯 혀만 남기고

용이여, 어디로 떠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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