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 ‘생명·평화 기원 미사’에서 해군기지 비판
“군비경쟁 전쟁위험 증대…한국 지도자들 경고 귀기울여야”

▲ 강정마을에서 미사를 집전한 강우일 주교. <박민호 기자>

[제주도민일보 이정원 기자] “얼마나 많은 민족들이 기아에 울고,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빈곤에 허덕이는가. 사람들은 학교다운 학교, 병원다운 병원, 주택다운 주택 바라고 있다. 국가나 개인의 낭비, 허영심에 가득 찬 지출, 치열한 군비경쟁은 웬말이냐” (1967년 3월26일자로 발포된 교황 바오로 6세의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 중).

강우일 주교는 11일 강정마을 중덕해안가에 모인 신자들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전하며 “이 경고를 한국 지도자들이 귀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우일 주교를 비롯한 30여명의 천주교 제주교구 사제단과 1000여명의 신도들이 강정 중덕해안가에 모였다.

11일 오전 ‘제주평화의 섬 실현과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한 생명·평화 기원 미사’가 집전된 가운데 강우일 주교는 강론을 통해 “4·3의 학살로 수 많은 피가 물든 섬에 아무일도 없던 것 처럼 군사기지를 세우는 것은 희생자의 무덤을 짓밟고, 그들의 죽음을 무위로 돌리는 행위”라고 엄중히 꾸짖었다.

강 주교는 “오늘날 지구에서 존엄한 인권이 조건없이 존중받게 된 이유는 고통과 희생에 대한 기억을 후손들이 어둔 장막뒤로 숨기지 않고, 꺼내놓고 곱씹었기 때문”이라며 “제주 땅은 4·3의 희생을 거름으로 새롭게 평화의 섬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 주교는 “3만명에 달하는 무고한 생명을 망각의 무덤 속으로 파묻고, 거기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조상들의 희생은 너무나 억울하고 무의미한 것이 된다”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강 주교는 “수 많은 희생자가 흘린 피에서 이념과 폭력을 뛰어넘는 평화를 창출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절호의 도약기회를 상실한다”며 “이에 제주는 제주도민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평화의 섬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 주교는 또 ‘가톨릭 교회 교리서’ 2315항을 소개하며 “많은 사람들은 무기 비축이 가상의 적에게 전쟁을 단념하게 하는 역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렇지만 군비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 보다 증대시키는 위험을 갖는다”고 강조했다.더불어 강 주교는 “새롭게 무기를 마련하기 위해 낭비하는 재원은 가난한 사람의 구제를 막고, 민족의 발전을 방해한다”고 덧붙였다.

미사가 끝날 무렵 신자들 앞에 선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강정마을은 비상계엄하에 놓여있다”며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녕·질서를 책임져야 할 군은 되려 강정 주민을 짓밟고 침탈, 유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 회장은 “해군기지 건설로 강정마을은 분열, 고통 속에 긴장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평범한 일상을 허용하는 것이 작은 평화이자, 평화의 섬 제주에 어울리는 진정한 평화다. 주민들은 그런 평화스런 일상을 얻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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