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희망사항

도청 인근 ‘ㅌ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꽃무늬 관광티셔츠를 입은 공무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식사 도중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비교적 커서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노란 관광티셔츠를 입은 공무원이 말했다. “요즘 언론들은 보도자료를 곧이곧대로 잘 써줘서 홍보가 필요 없어. 내치는 족족 글자 하나 안 틀리고 쓰는 데도 있더라” 맞은편에 앉은 공무원이 맞장구를 치며 “광고비 받으려면 그렇게 해야죠. 광고예산 없으면 무너지는 언론사 수두룩합니다”

이들의 얘기를 듣는 순간 ‘어이 상실’에 화가 치밀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슴 아픈 얘기였다. 지역언론의 발전과 독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무던 애를 쓰던 ‘선배’들도 많았을텐데 이런 얘기를 들어야하는 현실을 누가 만들었으며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말이다.

현장을 누비는 기자로서 민망하고 서글펐다. 하루 십수개 쏟아지는 행정기관 보도자료에 기자들은 확인·취재 없이 ‘속보전쟁’에 그대로 받아적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공무원들이 기자들 앞에서는 “기사 써줘서 고맙다”고 말하지만 뒤에서는 여지없이 ‘까는’ 모습을 확인하니 씁쓸했다.

얼마 전 일이다. 본보 후배기자는 분뇨악취 취재과정에서 제주도 모 부서 과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그 과장은 답변은 회피하고 “광고를 안줘서 취재하는 것이냐”며 비상식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또 모 부서 계장은 본보의 비판적인 보도에 대해 “이렇게 기사를 써서 광고를 어떻게 받겠냐”는 막말을 한 적도 있다.

공무원들이 지역언론을 어떻게 대하는지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친분 있는 모 공무원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인데 비판해봐야 서로 감정만 상하지 않냐”고. 아무리 건전한 비판이라도 서운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 현실에 제주언론의 갈 길이 어딘지 묻고 싶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지역언론의 질적 팽창 없이 양적으로만 팽창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점에 도달하게 됐다. 대다수 도민들의 생각도 분명 이와 같을 것이다. 이제 지역언론도 행정권력이나 토호세력의 ‘시다’를 자처할 게 아니라 ‘진일보’로 변화해야 될 시기다.

최근 제주포럼C라는 단체에서 ‘선배에게 길을 묻다’는 기획을 마련해 제주지역 원로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제주 미래가 나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 있다. “참신한 기획이다” “원로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 등 반응도 좋다.

‘지역언론에게 길을 묻다’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콧방귀 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과거 화려했던 지역언론다운 제모습 찾기에 노력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도민·독자들을 위해서 말이다.

/한종수 기자 han@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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