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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 소재 극장용 애니 기대하세요”[당신의 오늘은 어떻습니까] 애니메이션 작가 김민수씨

▲ 해군기지 반대 활동가 김민수씨
구럼비 해안에 반해 해군기지 반대활동 시작
강정주민 된지 3년…‘본’ 옮긴 강정김씨 시조


“수년 간 마을공동체가 파괴되면서 백년가약을 맺은 아름다운 커플이 이별을 맞이해요. 남자집안은 해군기지 찬성, 여자 집안은 반대였거든요. 둘은 사랑했지만 양가 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혔죠”

김민수(32)씨는 얘기 도중 명치끝이 막히는 듯 가슴을 툭 치고는 맥주 한 모금을 들이마셨다. 슬픈 말투지만 뭔가 상상하는 눈빛은 초롱초롱 빛났다. 민수씨의 다음 얘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이들은 죽음을 선택하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의 아픔은 극한에 이르게 돼요. 이 사실이 알려지며 제주도민 모두 나서 해군기지를 막아요. 결국 공사철회로 끝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겁니다”

강정주민이 된지 3년째인 민수씨, 해군기지 건설 갈등으로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 자연이 파괴되는 현장을 슬픈 눈으로 그릴 수밖에 없다던 그는, 작품 마지막 내용만큼은 해피엔딩이라 힘주어 말했다.

민수씨의 작품 구상 배경에는 그의 화려한 과거가 돋보인다. 그는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을 제작한 일본 유명회사 ‘가이낙스’에서 원화작가 및 매니저를 거쳤다. 결국 25편짜리 ‘아마가미SS’라는 애니메이션 작품감독까지 하게 됐다.

당시 20대 중반에 불과했지만 일본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교 때 이미 ‘만화판’에 데뷔한 이력이 한몫했다. 인기 만화잡지였던 ‘챔프’에서 ‘재즈’라는 처녀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민수씨가 강정주민이 된 사연은 과거 작품활동으로 친분을 쌓은 만화가 고권일 선배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꾀나 유명했던 대선배가 제주에서 함께 지내며 작품활동하자는 제안은 솔깃했다.

“당시 마을은 해군기지로 시끄럽더군요. 어느 날 중덕 구럼비 해안을 찾았어요. 멀리 범섬이 보이고 웅장한 바윗돌이 펼쳐진 이곳을 본 순간 반해버렸죠. 천혜의 경관을 헤치려는 ‘무뇌충’에 맞서 투쟁하기로 마음먹게 된 이유에요”

지난해 7월, 민수씨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알리기 위해 갓두루마기 복장을 하고는 열흘 동안 걸어서 제주도를 일주했다. 딱 3만원 들고 떠난 여정에 돌아올 때 그의 손에는 47만원이 쥐어져 있었다.

“찬성하는 사람한테 막걸리세례를 받아 옷이 다 젖기도 했고 빨갱이라는 말도 들었어요. 하지만 만나는 사람 10명 중 7명은 제게 힘내라고 응원해 주셨고 직접 나서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용돈까지 챙겨주시더군요”

민수씨는 열흘 간의 경험을 통해 제주도민들이 해군기지 문제를 강정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그에게는 도민들의 양심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민수씨는 구럼비 해안의 자연을 끝까지 지킬 계획이다. 주소지를 옮긴지 벌써 3년째다. 아니 ‘본’을 아예 강정으로 옮겨 자칭 ‘강정 김씨의 시조’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사연은 아픔이 컸다.

“오케스트라 단장이셨던 아버지는 제가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중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충격과 사춘기 반항으로 바이올린에서 손을 놓게 됐어요. 아버지는 많이 속상해하셨죠”

민수씨는 중·고교 때부터 아버지께 독서실 간다고 속이고는 만화가 화실에 다니면서 문하생으로 입문했다. 노력 끝에 데뷔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께 들키지 않으려고 공부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일류대 합격으로 증명했다. 대학 졸업 즈음에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교사 임용고시를 보게 됐다. 국제 콩쿠르 입상경력에도 손 놓았던 바이올린이 아버지의 가슴을 후벼팠기 때문에 거역하기 힘들었다.

“임용시험은 한 번에 합격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걸어야 할 길은 교사가 아니라 ‘만화작가’였던 거에요. 제 결정으로 아버지께서 호적에서 제 이름을 지우셨더라고요”

최근에도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지만 76세의 연세 지긋하신 아버지는 끝내 민수씨를 만나주지 않았다. 하루 빨리 강정의 갈등을 매듭짓고 해군기지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성공한 ‘작가’로 아버지를 뵙고 싶을 뿐이다.

/한종수 기자 han@jejudomin.co.kr

한종수 기자  han@jeju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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