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푸어]<1>청년 워킹푸어
꿈 위해 한 육지상경 남은 건 빚덩이
사회 첫발 내딘 청년 절반이상 빚쟁이
비정규직 수렁 “최저임금 현실화하라”

[워킹푸어: 왜 우리는 일할수록 가난해지는가]<1>청년 워킹푸어
새벽부터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노인들,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 전선에 뛰어든 청년들,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땀흘려 일하는 아버지들···. 하루하루를 열심히 일해보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마이너스’ 인생, ‘워킹푸어(working-poor: 근로빈곤층)’를 조명한다.

△대학 졸업장은 ‘빚문서’
숙명여대 졸업반인 이하정씨(27·여·가명)는 제주에 계신 부모님 생각만 하면 죄책감이 든다.

이씨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지난 2005년 제주대학교를 자퇴, 사립 여대에 진학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이씨는 ‘지방대’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었다.

처음 두 학기는 부모님에게 등록금과 생활비를 의존했다. 하지만 여동생 하윤씨(26·가명)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더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었다.

한 학기 등록금만 500여만원. 여기에 방세 40만원, 전기·수도료·책값·식비·교통비 등의 기타 생활비 40만원을 합하면 한달 80여만원이 필요했다.

이씨는 어쩔 수 없이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5학기에 걸쳐 대출받은 원금만 2500만원. 졸업후 그녀가 갚아야 할 빚이다. 대학 입학전 ‘0’이었던 그녀의 빚은 4년만에 ‘2500만원’으로 불었다.

이씨는 졸업이 두렵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카페 서빙, 학원강사·과외 등 아르바이트에 목숨을 걸다시피했던 그녀였지만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인 날이 더 많았다. 취업대란 시대, 그녀는 ‘빚’을 안고 사회에 발을 내디딜 자신이 없다.

서울의 대학에 입학할때만해도 박상호씨(가명·32)는 꿈많은 대학생 가운데 한명이었다. 그러나 대학생활과 동시에 절망의 덫에 빠져들었다.

박씨 역시 대학을 다니며 1800만원의 빚을 졌다. 고향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그 또한 열심히 일해도 등록금에 생활비를 감당하기 벅찼다. 그는 가정형편이 넉넉치 않았기에 부모님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학자금 대출로 진 빚을 갚기 위해 박씨는 대학 졸업후 온갖 일자리를 전전했다. 그는 당장 돈을 벌수만 있다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아르바이트와 임시 계약직을 오가며 안해본 일이 없다. 대형마트·물류센터·택배·이삿짐 센터·건설 현장·냉동창고·레스토랑·편의점·학원·수산시장·막노동 등 경력이 다양하다.

정규직을 지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빚을 갚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 그였기에 번번히 불합격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사회 첫발 ‘빚’과 출발
지금의 청년들은 ‘빚’을 지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 스펙 경쟁 사회에서 서울로 눈을 돌린 제주 청년들은 스펙 쌓기에 몰두하기 보다 당장 한주, 한달의 밥벌이를 고민해야 한다. 이들은 빚을 청산하고 생존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그들의 첫 일자리 ‘알바’나 ‘임시직’은 ‘정규직’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아니다. 지금의 청년들 대부분은 ‘저임금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수렁속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청년 노동자 권익단체인 ‘청년 유니온’이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적자를 피할 수 없는 ‘청년 워킹푸어’의 현실을 드러낸다.

청년 유니온은 5월 한달 동안 학원강사와 구직자·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비정규 사무직 등 10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가계부를 작성하게 했다. 이들 모두 1인 가구로 평균 연령은 29.4세였다. 가계부 작성 결과 한달 평균 84만9000원을 벌었고, 91만5000원을 지출했다. 매달 6만6000원 가량의 적자를 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계부 내역을 보면 청년들이 교육·자기계발에 투자하는 비용은 대부분 ‘0원’이다.

한국청년연대가 최근 발표한 ‘2011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뚜렷이 다가온다. 전국의 19~34세 청년 10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 사회에 첫발을 대디딘 청년의 절반 가량이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48.2%가 부채가 있다고 답했다. 부채 원인은 학자금 대출(36.9%), 주거비 부담(26.8%), 생활비 부족(21%) 순이었다.

김수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은 청년 워킹푸어가 발생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한다. 하나는 청년층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노동 시장에 진출해야 할 시기의 청년층에게 일자리가 제공되지 못한다면 그들은 근로 소득이 없는 실업이나 비경제 활동 인구상태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은 그들이 속한 가계를 워킹푸어로 전락시킬 수 있다.

또 하나는 낮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확산됐다는 점이다.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할 경우 1인 가구이거나 다른 가구원의 소득 수준이 아주 낮으면 워킹푸어로 전락할 수 있다.

‘2011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35.7%가 계약직·시간제·파견용역·일용직 등 비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중 취업준비중이거나 실업 상태인 사람은 14.4%에 이른다.

일자리가 불안한만큼, 소득수준도 낮았다. 올해 법정 최저임금인 90만2880원(주 40시간 기준)도 받지 못하는 청년 노동자가 전체의 3분의 1에 달했다. 반면 노동시간은 길어 3명중 2명꼴로 주 40시간 이상 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년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 청년들은 저임금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최저임금 현실화’를 꼽는다. 실태조사 결과 비정규직 전환 및 차별 해소, 등록금 인하와 학자금 대출 개선이 뒤를 이었다. 근로빈곤층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절실하다. 전 세대를 막론한 소득 계층에 따른 문화적 격차 확대는 저소득층의 사회적 단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청년 워킹푸어 문제 해결 방안으로 ‘청년 고용할당제’ 도입·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벨기에서는 시행 첫해에만 5만명 이상의 청년층을 신규 고용하는 성과를 거뒀다. 보건이나 교육에 대한 지원 등 복지정책과 사회보장 정책도 확대·추진돼야 한다.

무엇보다 ‘공론화’ 작업이 우선·시행돼야 한다. 청년 워킹푸어들이 열악한 현실에 처해있음에도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청년 노동자들이 독립적 가구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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