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오늘은…‘개척자들’ 박은애씨

운명처럼 이끌린 강정마을…해군기지 해결될 때까지 머물것
동티모르에서 5년간 봉사…지금의 제주는 전후보다 더 혼란

국제 자원봉사단체 ‘개척자들’의 활동가인 박은애씨(31)는 매일같이 강정 해군기지 공사현장 입구에서 양윤모 평론가의 석방을 촉구하는 1인 피켓시위를 진행 중이다. 단식 6일째부터 시작해 시위는 벌써 50일을 넘겼다.

그녀가 강정마을에 정착한 것은 지난 3월. 개척자들의 9년차 간사인 그녀는 동티모르에서 5년간 봉사활동을 벌이고 지난해 초 귀국했다.

그녀는 “귀국 후 한동안은 멍한 상태로 지냈는데 강정마을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 무엇인가 깨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평화운동가 최성희씨가 강정마을에 대한 상황을 매일같이 이메일로 알려오면서 점차 강정마을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최씨의 열정에 감탄, 도와달라는 부탁에 지난 1월 강정에 오게됐다.

“돌과 꽃,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동티모르와 한국의 중간쯤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죠. 주민분들은 바위 하나하나마다 이름이 있고, 추억이 담겨있고, 주민들의 삶이 녹아있다고 설명해줬죠”

그녀는 처음 온 제주도가 낯설지 않았다. 무엇인가에 이끌려 강정마을에 오게된 것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하지만 그런 풍경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처음 강정을 찾은 날, 바닷가에는 포크레인이 바위를 부수는 공사가 진행됐다. 그녀는 누군가 남아서 주민들과 함께 이곳을 지켜야 하는 생각을 하게됐다. 그리고 한달후 돌아와 강정마을 주민이 됐다.

양윤모 평론가가 구속돼 1인시위를 하기 전까지 그녀는 강정 바닷가를 청소하고, 주민들의 농사를 도왔다. 또 시공업체의 공사 시도로 충돌이 벌어지는 현장을 기록하는 것도 그녀의 일과였다. 그같은 과정에서 그녀는 마을주민들에게 평화를 배웠다고 말했다.

“강정마을 주민분들이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현장에 와보면 느낄 수 있어요. 한번은 공사 차량이 진입하려고 하는데 주민 한분이 차량을 막고 앉아서는 막걸리나 한잔 하면서 얘기하자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평화의 메시지처럼 들렸죠”

또 주민들의 순박함과 소박한 정에 감동할 때도 한두번이 아니다. 집과 먹을 것을 제공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문밖에 라면·커피·김 같은 식료품들을 몰래 놓고 가기도 한다.

“주민분들이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몰래 마음을 표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군기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주민들이 아무말 없이 지켜보는 것 같지만 그것이 싸우는 방식이에요. 묵묵히 지켜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어요. 훗날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목격자, 증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당초 6개월간 머물려던 계획이었지만 그녀는 이미 해군기지 사태가 해결되기 전까지 강정을 떠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내린 상태다. 지금의 제주도 상황은 전후의 동티모르보다 더 혼란스럽다는 생각에서다.

“전후의 상황은 정말 참혹해요. 하지만 더이상 싸울 일이 없어지면 그런 가운데서도 평온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죠. 그런면에서 강정마을의 전쟁같은 하루하루는 동티모르보다 더 혼란스럽죠”

전후의 동티모르에서 전후 복구 봉사활동을 하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는 그녀는 강정 바닷가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면서 전쟁을 위한 시설을 지으려는 시도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사람이라도 저항한다면, 표현한다면 지킬수 있어요. 그래서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이 정말 소중하죠.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주시면 더 큰 힘이 될겁니다”

<제주도민일보 강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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