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자수첩>

“여기는 국방부 소속 땅입니다. 여러분들은 불법으로 공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경고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 나왔다. 당장 주민들이 격분했다. “여기가 왜 국방부 땅이란 말이냐. 증거 있느냐”.

항의에도 아랑곳않고 경찰은 거듭 구럼비 해안가는 “국방부 소속”이라고 고지했다. 이에 다시 많은 주민들은 “여기는 국방부 소속이 아니라 절대보전지역이다. 주민들이 피땀흘려 농사를 지으며 지킨 땅이기도 하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제주가 ‘7대 경관’이라고 자랑할 만한 근거가 되는 강정바다는 어느덧 공권력의 말에 따라 ‘국방부’ 소속이 돼버렸다. 국방부 마음대로 경관을 헤쳐도 된다는 섬뜩한 속뜻마저 느껴졌다.

그동안 모든 노력을 다해 마을을 지켰던 주민들의 삶은 철저히 무시됐다. 강정마을의 오랜 역사도 경찰의 한 마디에 의해 송두리째 휘발됐다. 해군이 제주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자리잡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라면 제주도민의 정체성, 역사, 삶도 팔아치울 수 있다는 위험한 철학이 낳은 참사이기도 하다. 어느덧 다수 도민들은 ‘경제적 부’라는 목표를 위해 더 소중히 챙겨야 할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놓치고 있다.

19일 강정마을에서 벌어진 경찰의 강제연행은 근본적인 삶의 가치를 무시한 채 오직 ‘경제적 부’를 향해 달린 제주사회의 참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제주의 고유 자원과 사람, 역사는 시장에서 교환될 물건이 아니다. 아무리 경제활성화가 중요한들 제주 고유의 가치는 제주 공동체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강정바다가 ‘국방부 소속’이라는 발언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그의 책 <거대한 전환>을 통해 “인간·자연·화폐를 상품으로 보고 ‘시장’에 맡긴다면 결국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비극만 낳고 모두 실패할 수 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오늘(20일) 열릴 ‘한국공항㈜ 지하수 증산 관련 토론회’도 걱정이 앞선다. 제주의 ‘물’이 자칫 기득권의 결정에 따라 ‘시장’에 무분별하게 내몰릴 위험에 처했다.

후손에게 깨끗하고 풍족한 물을 물려주자는 제주사회의 이상도 위협받게 생겼다. 제주의 물이 시장원리에 의해 사유화되는 순간, 제주사회와 도민들의 삶은 본격적인 수탈의 역사에 들어서게 된다.

제주의 땅과 물. 이것들을 특정 주체에 내주면서 도민들은 절대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한다. 오히려 앞으로 더 심한 빈곤을 견뎌야 할 것이다. <이정원 기자·취재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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