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경 <아트스페이스C 대표>

<엄마…>란 다큐멘터리가 있다. 이 영화는 지난 2004년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옥랑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한 류미례 감독의 가족사다. 엄마를 때리던 아버지의 죽음을 행복으로 생각했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깊은 상처로 갖고 있는 감독.

아버지의 죽음 이후 겪은 지독한 가난과 그 삶속에서 생존과 자기감정에 충실해 자식들에게 살갑지 못했던 엄마가 감독은 참으로 섭섭했다. 그런 감독의 마음에서 출발해 독립된 인간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던 애초의 계획은 자신과 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확대됐다.

같은 영상 다른 공감

다큐에 등장하는 모든 에피소드들과 이를 담아내는 감독의 시선에서 나는 감동과 가슴 저미는 안타까움을 절절히 느꼈다. 어두운 개인사를 드러내는 용기에도 감탄했다. 특히 혼자 힘으로 대학과 러시아 유학까지 마치고 그 곳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자기 분야 연구자로서 창창한 앞날을 기대 받던 둘째 언니. 언니는 일과 가정의 병행을 보장하겠다며 끈질기게 구애한 남자와 결혼했지만 상황은 애초 약속과 달랐다.

절망해 이혼도 고려해봤지만 언니는 자기가 어린 시절 겪었던 상처를 애들에게 대물림하게 될까봐 꿈을 접었다고 말한다. 그 대목에 이르면 비슷한 또래 여성으로서 ‘아!’ 하는 탄식과 함께 가슴 먹먹해지는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힘든 가족사를 진솔하게 드러낸 이 다큐는 관람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받았고, 제주여성영화제에서는 빗발치는 요청 때문에 예정에 없던 특별 앵콜 상영까지 했다.

몇년후, 여성단체장이 대부분인 어느 위원회에서 여성주의적 시각의 공감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느껴 이
동하는 기회에 버스 안에서 그 영화를 상영했다. 버스 영상기계의 음향 고장 때문에 50분간 변사역할까지 해가면서 열정적으로. 그런데 상영이 끝나자 나이 지긋한 한 여성 위원이 “거보라, 그추룩 공부 하영 헌 여자도 아이들 때문에 다 그만 둼시네. 걔난 아들이 이서사주 아들이” 하는 것이 아닌가.

아, 세상에! 그 때 난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 위원은 같은 여성이지만 힘들게 자기 성취를 하려는 며느리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가부장제의 억압에 기댄 아들을 가진 시어머니의 권력을 당연히 받아들이는구나”
공감 능력이 없으면 모든 걸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그 결과가 세대를 이으며 반복되는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공감결여 대한민국

지진과 해일로 순식간에 폐허가 된 일본 도호쿠 지방. 그로 인해 파괴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유출되는 방사능. 최악의 경우 폭발위험까지 일어날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그 극한의 상황과 오염범위 확대로 인한 공포가 연일 시시각각 보도되고 있다. 이 가운데 경북 울진군과 강원도 삼척시에서는 원자력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단다. 벨기에 등 선진국들은 단계적 폐기 혹은 추가 건설계획을 접고 있다는데, 계획된 원전을 이대로 다 실행한다면 우리나라는 2024년에 원전 밀집도 세계1위가 된다고 한다.

일본에서 벌어지는 재난이 언젠가 우리의 미래로 눈앞에 펼쳐질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타인의 고통을 보며 교훈을 얻는다는 건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훈마저도 얻지 못한다면 그건 바보이거나 저주일 것이다.

정부는 왜 대체에너지 개발에 힘쓰기보다 원전 설립을 추진하는 것일까. 왜 실시간 보도되는 이런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보면서도 그것이 곧 우리가 겪을 수도 있는 문제란 사실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공감하지만 국민들이 겪게 될 지도 모르는 위험보다 당장 손쉬운 해결책으로 국민의 공포를 외면하려는 걸까.

왜 삼척시와 울진군 주민들은 그런 위험을 무릅쓰려는 것일까. 왜 정부는 국민들의 안전을 뒤로하고 원전건설을 부추기고 있는 것일까. 왜 안전성에 대한 정밀한 진단에 앞서 정확한 정보도 알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투표로 선택하게 만들까. 정부와 관련 연구자들에게 묻고 싶다.

이렇게 지구에 예측 불가능한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백두산에 화산 폭발 가능성이 탐지되는 시점에서 정말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라고 말할 수 있는지. 다시 묻는다. 당신들은 원자력단지 주변에 가족들과 함께 기꺼이 옮겨가 살 수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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