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배 <제주대학교 교수>

4월이다. 정말 아름다운 봄이다. 4월이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생명의 기운을 느끼며, 저절로 입가에 웃음을 짓게 된다. 산을 보아도 생명이 솟아나고, 강을 보아도 생명이 흘러가고, 바다를 보아도 생명이 꿈틀댄다. 그래서 4월은 생명의 계절이다.

그러나 제주 사람들은, 4월이 되면 생명을 느끼기 이전에 죽음의 아픔을 먼저 느낀다. 우리들에게는 육지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없는 4.3이라는 글자가 진한 빨간 빛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죽음과 고통을 먼저 느끼는 4월. 누가 제주 사람들의 4월의 가슴에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고통을 새겨 놓은 것인가?

‘생명살이’ vs ‘죽음의 힘’

신학적으로 보면, 악(惡)은 생명의 반대말이다. 그래서 생명은 곧 선(善)이 된다. 그 어떤 인간의 생각이나 행위도 생명 앞에서는 선(善)의 자리를 드러내지 못한다. 때문에 생명을 죽이는 것은 그 어떤 것을 앞세워 합리화하여도 결코 그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

제주 사람들은 그저 생명살이를 하던 소박한 민중들이었다. 그들의 삶 속에는 타인의 죽음을 의도하는 그 어떤 사상도, 생명을 소진하는 그 어떤 갈등도 없었다. 그들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그저 ‘생명을 함께 살아 온 소박한 민중들’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생명살이’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제주 사람들 속에, ‘죽음도 불사하는 생각’들이 쳐들어왔고, 서로 다른 생각을 죽이기 위한 그들의 싸움 와중에, ‘생명을 함께 살아 온 소박한 민중들’인 제주 사람들은 갑자기 ‘죽음의 허허벌판 위’로 내몰리게 되고 말았다. 이것이 4.3이다.

이쪽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고, 저쪽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4.3의 결과는 그 어느 쪽도 옳지 않았음을 우리들에게 드러낸다. 그 ‘이쪽저쪽의 생각들’이 모두 타자의 죽음을 불사한다는 생각들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4.3은 생각과 생각이 부딪힌 사건이기 이전에 ‘생명살이와 죽음의 힘’이 서로 부딪힌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4.3은 생명 그 위에 군림하는 생각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우리들에게 뼈저리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생동하는 힘’으로 맞서야

생명! 이를 능가하는 생각이나 행위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들이 4.3을 통하여 배워야 할 것은, ‘이쪽이나 저쪽 생각의 우월성’이 아니라, 그 어떤 생각이라 하더라도 생명살이를 짓밟는다면, 그런 ‘생명살이를 무시하는 생각과 행위들’에 대하여 분연히 저항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소박한 생명살이’는 너무나 아름답다. 그러나 ‘소박한 생명살이’는 그 자체만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 도리어 생명을 파괴하려는 생각과 행위들에 대하여 언제든지 ‘생동하는 힘’으로 맞서려는 의지가 있을 때, 아름다운 ‘생명살이’는 가능해진다. 이것이 4.3의 교훈이며, 이것이 우리 선조들이 흘린 가슴 아픈 죽음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일일 것이다.

2011년 4월 3일 보내면서, 과연 오늘의 제주 땅이 생명의 땅인지를 물어 본다. 4.3은 타인의 죽음을 강요해서라도 자신들의 생각을 구현하겠다는 ‘죽음의 세력들’이 부딪힌 사건이다. 그러면, 2011년의 제주는 어떤가? 그런데 놀랍게도 2011년 4월의 이 제주 땅 역시 ‘자기의 생각과 행위는 옳다’고 강변하면서, 타인의 생각과 행위를 죽여도 되는 것쯤으로 여기는 생각들이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2011년의 4.3의 비극은 바로 해군기지 갈등으로 극명하게 재현되고 있다. 4.3은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역사적인 사건만이 아니다. 지금도 힘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행위는 옳고 타인(민중들)의 생각과 행위는 틀렸다는 아집으로 상대의 생각과 행위를 속박하고 죽음으로 내몰려고 하고 있다면, 바로 그들이야말로 제주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4.3 당시의 죽음의 힘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래서 해군기지는 결코 이 제주 땅에 있어서는 안 되는 4.3의 변형된 죽음의 기지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의 힘’인 해군기지를 ‘생동하는 생명살이의 힘’으로 막아 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아, 생명의 4월에 또 다시 죽음과의 싸움을 이야기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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