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종 <문화활동가>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일본정부가 자국의 중학교 교과서를 통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자 일본 지진 피해를 돕는 것에 대한 국내 여론이 급속하게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지진피해 돕기에 동참하지 않았던 가수 김장훈이 새삼 “옳았다”는 평가를 일각에서 받는 모양이지만 사실 일본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독도를 두고 벌어지는 사태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충분히 예견된 수순일 뿐이다.

일본과 일본인은 다르다

“김장훈이 옳았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그러자면 두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하나는 일본정부와 일본인을 동일시(同一視)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일본 정부가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할 줄 몰랐을 때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 정부의 태도를 알고 있던 터여서 새삼 거론할 가치가 없는 일이다. ‘우리가 너희를 이렇게 돕고 있는 때 이럴 수 있나’하는 생각은 미안하지만 순진한 생각이다.

문제는 전자의 경우인데, 나는 일본이라는 국가, 정부라는 체제와 일본인이라는 사람을 구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가와 그 구성원은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어 완벽하게 분리해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는 건 사실이고, 또 우리도 그렇듯이 정부의 왜곡된 선전, 선동을 그대로 믿는 어리석은 일본인도 많을 것이다. 특히 교육과 미디어를 정부나 정부를 지지하는 자본에게 장악당한 경우에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의식화가 이뤄지고 있어 잘못된 생각을 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모든 일본인이 일본 정부의 침략적 태도에 동조하는 건 아니다. 멀리로는 임진왜란에서부터 일제시대, 그리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국가의 침략적 행위에 반대해 우리를 돕고, 평화적 활동을 벌인 사례가 있다.

그와 반대로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잔인한 식민 지배를 도운 반민족, 반평화적인 부역을 한 친일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면에서 볼 때 국가와 개인을 동일시하는 건 바람직하지도 성숙한 관점도 아니다. 오히려 국가와 개인을 분리해 올바른 생각과 행동이 국제적으로 연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인류와 세계평화를 위해서 훨씬 바람직한 일이다.

출신지로 사람 평가할 수 없어

좀 다른 얘기지만, 평소 이명박대통령을 비판할 때 일부 사람들이 대통령의 출생지를 거론하는 게 나는 영 마뜩찮다. 진실이 무언지 모르겠지만 설사 이대통령의 출생지가 일본이라고해도 그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비난을 받을 일이 있다면 그 말이나 행위 때문이어야지 출생지 때문이어서는 옳지 않다.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역사적 질곡 때문에 타국에서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중에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제주만 해도 일제시대 당시 생존을 위해, 혹은 공부를 하기 위해 제주와 일본 오사카를 왕래하던 정기여객선 기미가요마루(君が代丸)호를 타고 일본에 건너가 자리 잡은 제주인은 또 얼마나 많은가. 타국 땅에서 온갖 설움과 압박을 받으며 살면서도 고향 제주를 돕고, 자식들을 낳아 살아온 제주인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제주인인가. 한국인인가. 조선인인가. 일본인인가. 우리는 그들과 그들의 자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일본과 일본인을 구별해서 보면, 우리가 미워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과 대재앙 앞에 고통받는 대상 사이에서 겪는 복잡한 감정적 갈등을 극복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본 지진 피해를 돕는 것을 국가와 국가의 문제로 환원해서 보아서는 안 되며 철저히 이재민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일희일비할 까닭이 없다. 그런 면에서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모금운동을 벌이는 것은 과잉행동으로 비쳐지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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