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예총 4·3예술제] 예술 타고 다시 만난 4·3

2일 탐미협 초심찾아 이덕구 산전제 시작으로
전야제선 약속-가을-재회 소주제 아래 극 공연
사진·노래·음악으로 아우른 다시만난 4·3

4·3을 하루 앞둔 2일, 도내 곳곳에서는 예술로 피워낸 4·3 추모행사의 꽃이 만발했다. 어느 해보다 쉽고 기본에 다가선 행사 구성이, 오히려 도민들에겐 4·3을 편안하고 가슴깊이 담게 했다는 평가다.


2일 오전 제주민예총 산하 탐미협 회원들이 이덕구 산전제를 올렸다. <문정임 기자>

이를 위해 올해 제18회 4.3미술제는 열리지 않았다. 올해 유일한 출품작은 바로 저, 젯상이다. 조각가 강문석씨가 만들었다. 강씨는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분들이) 밥상없이 밥을 먹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상석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문정임 기자>

이날 산전제에는 소설가 현기영씨가 동행했다. <문정임 기자>

탐미협의 초심찾기

2일 아침, 사려니 숲길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행사의 주인공은 제주민예총 산하 탐라미술인협회. 이들을 필두로 「순이삼촌」의 저자 현기영 선생과 고희범 제주포럼C 공동대표, 문무병·박찬식 등 4·3연구소 일행 등 60여명이 숲길 행진에 나섰다. 한시간을 걸어 닿은 곳은 이덕구 산전. 4·3당시 김달삼의 뒤를 이어 유격대 총사령관을 맡았던(1948.8~1949.6) 그가 항전을 벌이다 죽은 곳으로 알려진 장소다.

이덕구의 죽음은 확실치않다. 당시 화북지서 주임을 맡았던 이는 이곳 이덕구의 위치가 경찰쪽에 포착됐고 교전중 자신이 이덕구를 사살했다고 증언했고, 반면 아지트가 포위되자 이덕구가 자살했다는 설도 있다. 이덕구의 시신은 이후 관덕정에 내걸려 본보기로 삼아졌고, 병문천 냇가에서 불태워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덕구 산전에 남겨진 솥.

회원들은 창립때 이 곳을 찾아 제를 올린 바 있다. 4·3이 가야할 길에 자신들도 미술을 도구로 도민과의 소통의 한 축을 책임져 같이 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18년, 그동안 한번도 찾지 못했던 이 곳에 회원들이 다시 모였다. 워낙 오래된 탓인지 위치를 놓고 잠시 헤매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회원들은 항쟁에 앞장섰지만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를 위한 위무제를 올리고 탐미협이 4·3미술제를 꾸려가야 할 방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토론은 이날 저녁 비공개로 이어졌지만 그에 앞서 초심찾기의 일환으로 계획한 일정이었다.

송맹석 탐미협 협회장은 “반성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단체는 분명 다른 미술인단체와 다른 정체성이 있는데, 4월 행사만 끝나면 흩어졌다가 1년뒤 4월에 다시 만나 행사를 잠깐 치르고 헤어지는 등, 의례적으로 임해온 데 대한 반성이다. 도민들에게 더 쉽고 깊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론적인 고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치열한 토론이 이어질 예정”이라고 이번 이례적 일정의 이유를 밝혔다.

이러한 초심찾기 논의를 위해 탐미협은 이번 18회 4·3미술제를 과감히 내년으로 유보했다. 이들은 이날 저녁 제주도문예회관에서 열린 전야제 참석후 늦은 시간 다시 모여 논의를 진행, 오는 6월 내년도 4·3예술제 행사계획 구성때까지 정리할 방침이다.

음악과 극으로 가슴을 파고든 4·3

2일 해가 물러나면서 문예회관에서는 전야제 행사가 벌어졌다.

전야제가 한창인 대극장 앞 로비 사진전. <문정임 기자>

전야제는 약속-가을-재회, 3부의 공연으로 이뤄졌다. 4·3의 광풍을 만나 산으로 바다로 흩어지며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는 1부에선 사물놀이 마로의 삼석울림과 풍물굿패 신나락·어린이민요단 소리나라의 공연이, 고향을 등지고 선 그해 가을날의 기억을 담은 2부에선 놀이패 한라산·민요패 소리왓·제주민예총 음악위원회 원 등의 연합공연이 정점을 이끌었다. 삶은 죽음으로 죽음은 삶으로 엇갈리던 세월을 담은 3부에서는 재일동포 가수 이정미씨의 노래와 대동풀이가 진행됐다.

강요배 화백의 작품을 배경으로 한 무대 연출은 초가 등 꼼꼼히 챙겨진 소품과 어우러지며 4·3 당시 제주의 모습을 생생히 재현했다. 또, 2부에 참여한 테너 현행복과 제주대 음악학과 현악 4중주 팀의 무대는 4·3을 서양 현악으로 느끼는 이색적인 느낌을 전했다. 올해도 잊지 않고 일본에서 찾아온 한라산을 생각하는 모임의 방문은 4·3이란 상처로 묶인 국경을 초월한 공감대의 끈을 확인시켰다.

사진으로 보는 4·3 그후

같은 시각, 문예회관 전시실에서는 탐라사진가협회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들은 ‘가매기 모른 식게’를 주제로 기록전을 준비, 4·3 당시 하루동안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마을 조천읍 북촌리와 동복리에서 같은 날 제사가 치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북촌리는 4·3이후 ‘무남(無男)촌 북촌’이라 불렸을만큼 피해가 컸다. 당시 세화리에 주둔하고 있던 제2연대 3대대가 북촌리를 지나던중 무장대의 공격을 받아 2명이 숨지면서 시작된 북촌리의 비극은 현기영씨의 소설 「순이삼촌」(1978)에 잘 나타나 있다. 동복리의 비극은 1948년 마을안 비석거리에서 남편과 아들이 산으로 도피했다는 이유로 주민 9명이 희생되면서 집단 학살이 본격화됐다. 지금도 동쪽 끝 도로변에 해풍으로 휘어진 팽나무 한 그루가 그날의 참상을 말없이 대변하고 있다.

마을에 어둠이 내려앉고, 음식이 올려지고, 지방을 쓰고, 초를 켜는 후손들의 모습이 아직 4·3이 끝나지 않은 명제임을 더욱 실감케 했다.

한편 제주민예총 주관 4·3예술제의 4·3문화행사는 계속 이어진다. 청소년 평화마당은 양미경씨의 연출아래 청소년 워크숍과 창작물 전시, 시낭송, 판토마임, 진혼곡 무대로 오는 16~17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마련된다. 제주민예총 연극위원회는 4·3의 아픔과 인권의 소중함을 풀어낸 마당극을 오는 28일부터 5월1일까지 4일간 제주도 문예회관 소극장과 야외놀이마당에서 펼친다. 28일 오후6시, 29일 오후5시, 30일 오전10시, 5월1일 오후5시부터다. 문의=758-0331. <글 사진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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