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골목길 저만치서 들어서고 있다. 확 트인 대로 위를 쏜살같이 달려 얼른 왔으면 좋겠지만, 언제나 봄은 감질나게 까탈을 부리며 골목길을 맴돌듯 천천히 다가온다. 자꾸만 늑장을 부리는 봄을 보며, 지구온난화로 가뜩이나 짧아졌다는 봄날이 이러다 아예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난다.

어찌 사라지는 것이 봄날뿐일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골목길도 사라지고 있다. 우회 때문에 느려지는 속도가 바쁜 현대인의 생활과 맞지 않고, 좁은 도로 폭이 통행과 화재진압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많은 골목길이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얼마 전, 어릴 적 자주 갔던 동네를 갔더니 꼬부랑 골목길 일색이던 그 곳이 고층 아파트촌으로 변해 있었다. 좁은 것은 사라지고, 헌것들은 모두 새것으로 바뀌어 그곳엔 이미 내 기억속의 어떤 장면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골목길은 직선대로가 지니지 못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봄이 오면 길섶에 심어놓은 꽃들이 다투어 봄소식을 전하고, 이웃의 처마 끝에 걸린 파란 하늘이 눈을 시리게 했다.

저녁 무렵이면 길 전체에 퍼지던 된장찌개 냄새처럼 소박한 이웃의 일상이 골목길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차가 지나지 못해 불편하지만 한편으론 차를 피할 필요 없이 맘껏 사색에 잠겨 걸어 다닐 수도 있었다.

초고속 직선 도로에서는 접하지 못하는 여유로움이었다. 넓은 주차장이 바로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요즘
아파트촌과 달리, 좁은 길을 따라 이웃의 담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간적인 장소가 골목이었던 것이다.

그런 골목길이 사라지면서 이웃들과 멀어지게 되고, 환하고 넓은 도시에서 풍요를 누리게 되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고독해졌다. 사람들 사이에 견고한 콘크리트 건물같은 비밀이 쌓여가고, 아우토반처럼 질주하는 현대인의 일상이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요즘처럼 바쁜 시대에 굽이굽이 돌아가야 하는 골목길이 그립다고 하면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 할까? 어쩌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추억 속의 골목길을 잃어가고 있기에 늘어놓는 푸념일지 모른다. 허나 빠르지 않으면 뒤처지는 일상에 지쳤기에 털어놓는 하소연이다.

유난히 시간이 더딘 봄날, 시시하지만 정이 많은 이웃들이 살아가던, 게으르지만 어느 곳보다 일찍 봄꽃을 피워 올리던 골목들이 그립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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