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 종이에 아크릴물감 | 12X15cm | 영국, 브리스톨 시립미술관)

파울라 레고(1935~)는 유년기의 환상과 다소 페티시적인 성의 혼합물을 종이 위에 표현해낸 화가다. 안토니오 데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의 독재가 숨통을 죄던 리스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레고는, 외딴 곳에 격리된 채 양육되는 특권을 누리며 성장했다.

특히 아이 주변에서 여성이 구두(口頭)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포르투갈의 전통은 유년 시절의 레고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 이야기에는 로마 카톨릭 문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요망되는 여성의 역할, 그리고 난무하던 정치적 탄압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후 동화와 만화, 유년기의 환상, 의인화된 동물, 일반 상식의 전복, 그리고 개인적·성적 억압 등은 레고의 작품을 특징짓는 요소가 되었다.

그녀의 몇 작품에 등장해 온 ‘비비안 소녀들’은 상상의 행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헨리 다거의 동명 소설에서 연원한 것이다. 이 행성에 살고 있는 7명의 기독교도 공주들, 즉 비비안 자매들은 유년기의 노예 생활(악의 신을 영접해야 하는)에 맞서 싸우고자 종종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인다. 위 그림에서, 제멋대로인 소녀들은 다양한 임무에 몰두해 있다. 그 중 순진한 어린 애 같은 한 소녀는 성적 게임(굴종과 지배에 다름 아닌)을 알리는 피리를 불고 있다.

이 작품 속 소녀와 동물, 색채는 모두 팝아트의 만화적 느낌을 자아낸다. 화가가 고안한 개인적이고 꿈같은 이야기가 담긴 이 작품에서 모든 것들은 일종의 카오스적(혼돈) 패턴을 형성한다. 결국 레고는 유년 시절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여성의 유형을 변형시키고 있다. 이제 그 여성은 우리에게 여성의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금껏 당연시 해온 가치와 믿음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발췌=「명화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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