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배 <제주대학교 교수>

참으로 슬프다. 참으로 부끄럽다. 그리고 참으로 화가 난다. ‘참으로 슬프다’함은 필자의 제자 중의 한 명이 ‘말도 되지 않은 징계’를 받을 처지에 있기 때문이요, ‘참으로 부끄럽다’함은 아직 제주 교육이 자존도 없이, 권력 앞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요, ‘참으로 화가 난다’함은 교육행정의 힘을 가진 자들이 교육의 미래 비전이나 합목적성도 없이 그저 실정법 안에 안주하려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정법이 아닌 합목적성을 따져야

우리는 교육자의 개인적 행위와 교육적 행위를 엄격히 구분한다. 특히 그 내용이 종교나 정치 등 특정 이념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특정 종교를 믿는 한 교사의 신앙행위는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권리다. 때문에 우리는 교사들의 개인적인 신앙행위를 비난하거나 법적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그 교사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교사를 비판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신앙을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특정 종교 교육은 결코 보통교육에서는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교사 개개인의 자유로운 정치행위는 그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권리임을 믿는다. 때문에 교사 개개인이 어느 정당의 이념과 정책을 지지하든, 그러한 정치행위를 비난해서도 안 되고, 법적으로 제한해서도 안 된다. 물론 교사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이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든다면, 우리는 그러한 교사를 비판하여야 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특정의 정치이념을 일방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교육적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종교교육이나 정치교육과는 달리, 교사 개개인의 종교적 행위와 정치적 행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실정법은 어떠한가? 교수들과는 달리, 사실상 초중고 교사들의 정치적 행위에는 여러 제한을 가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제한은 폐지되어야만 한다. 교수들이나 교사들이나 간에 인간 고유의 권한을 제한하면서 차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들의 개인적인 정치행위를 실정법에 맞는가라는 관점에서 따지는 것은 결코 미래지향적인 바람직한 처사가 아니다. 도리어 그 행위가 인간 고유권한에 합목적적인가를 따져야 한다. 그런데 ‘실정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정치행위의 자유’라는 합목적적인 인간권리를 범죄시하여 중징계를 의결했다니… 이는 자기도피적인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교사들의 정치행위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이 땅의 정치인들과 교육 행정가들이, 정치행위와 교육행위를 분리하여 바라보는 교사들의 성숙함을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먼저 이러한 불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사들에게 종교행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그들은 결코 특정 종교의 교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 정치행위의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교사들에게 정치행위의 자유를 주었다고 해서, 자신들의 정치이념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리라 보지 않는다. 이런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교사들의 인격을 침해하는 것 같아 죄송할 따름이다.

자존적인 제주교육의 길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번 고 교사에 대한 중징계 사유는 ‘전교조의 사무처장’으로서, 특정 정당에 겨우 2만5000원의 정치후원금을 낸 것이 이유란다. 그렇다면 고 교사는 인간 고유의 권리인 정치행위의 자유를 실천했을 뿐이다. 그것이 실정법에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위는 인간 고유의 권리라는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자유와 평등이 살아 숨쉬는 우리사회의 정의로운 미래는, 다만 어떻게 하면 실정법에 저촉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권력에 밉보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데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고유의 권리라는 합목적성을 따라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실천에 달려있다.

이제 공은 징계위원회에서 교육감에게로 넘어갔다고 한다. 그가, 인간고유의 권리라는 차원에서 이번 징계의 부당함을 인식하리라 기대해 본다. 그러나 만일 ‘규정 상(?) 징계위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 앞에서 도망간다면, 우리는 제주교육의 미래를 그리 밝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고유한 권리’ 앞에서의 용기 있는 교육감의 결단이 정치행위와 정치교육을 구별할 줄 아는, 자존적인 제주교육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되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