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 | 캔버스에 유채물감 | 개인소장)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태어난 클라우디오 브라보(1936~)는 1960년대 마드리드에서 사교계 초상화가로 성공을 거두면서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1972년 이래 그는 모로코 탕헤르에 살면서 구상적이지만 보다 개념적인 그림들을 계속해서 그려나갔다. 한편, 그의 최근 작품들은 세부묘사에 관한 세련된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국화’는 구상회호와 리얼리즘의 유행이 시들해진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아이러니라는 측면에 비추어 볼 때, 브라보의 기괴한 아카데미 양식은 관람자로 하여금 이미지를 꽤 형식적인 하나의 사건, 혹은 리얼리즘과 전체 추상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소녀의 손에 들려진 꽃과 뒤로 묶은 머리는 이미지의 움직임과 리듬감을 유지하기 위해 도입된 형식적 장치이지 어떤 심원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브라보의 뛰어난 도안 기술, 그리고 에스파냐의 거장 벨라스케스와 수르바란을 떠오르게 할 만큼 세세한 표면 질감의 절묘한 아름다움을 살펴보며 기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이 그림의 목적인 셈이다.

브라보는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언제나 심미적인 화가의 길을 걸어왔다…누군가 이 그림에서 물감 표면을 보는 기쁨 이외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국화’는 아마 관람자를 삶의 거주공간이나 화가의 작업실로 안내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관람자는 이젤 앞에 앉혀지게 될 것이다.” 브라보의 작품은 볼티모어 미술관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산티아고 국립미술관, 멕시코시티의 루피노 타마요 미술관 등 유수의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발췌=「명화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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