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1974 | 캔버스에 유채물감 | 313.5X433.2cm | 호주, 캔버라 국립미술관)

아서 보이드(1920~1999)는 가장 사랑받는 호주 예술가 중 하나이지만, ‘화가’보다는 ‘장사꾼’이 되길 원했다고 일컬어질 만큼 미움을 산 화가이기도하다. 빅토리아 주 머럼비나에서 태어난 그는 예술가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그의 부모의 결혼 생활은 평탄치 못했고, 특히 아버지가 작업실 화재 사건으로 재정적 파탄을 맞게 되자 아서 보이드는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화가인 아서 메릭 보이드(1862~1940)의 손에 길러지게 되었다. 손자의 재능을 길러준 할아버지는 그와 함께 살며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잔악과 인종주의를 목격한 보이드는 불구가 된 군인과 방랑자들을 담은 일련의 표현주의 작품들을 제작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조국 뒷마당에서 호주 원주민들이 얼마나 가혹하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발견한 뒤 괴로워했으며, 이러한 경험을 ‘신부 연작’으로 알려진 몇 점의 그림을 통해 부각시켰다. 1950년대 말, 런던으로 이주한 보이드는 그곳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견해를 담은 유명한 ‘네부카드네자르 연작’을 제작하기도 했다.

1970년대 초 보이드는 호주 풍경 속에서 괴로워하는 인물들을 담은 일련의 회화를 제작했다. 위 그림은 뒷다리로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발가벗은 예술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한 손으로 그림붓을 움켜쥐고 있으며, 다른 한손으로는 한 더미의 금을 잡고 있다.

훗날 화가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 바 있다. “당신이 정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싶어하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개념이다. 개념은 미래와 결부되는 것이지만, 재산은 그렇지 않다.” 보이드는 호주 국립미술관에 3천 점 이상의 회화와 드로잉, 그 밖의 작품들을 기증했다. 발췌=「명화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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