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의 ‘변시지미술관’ 나올까 걱정
예산때문에 호기(好機) 잡고도 적극 못 나서는 서귀포시
‘이도동시대’열며 문화로 발빠른 이미지메이킹 나선 KBS제주

▲ KBS제주총국 개국60주년 기념 변시지초대전이 시작된 지난달 10일, 변 화백의 작품 2점이 전시되고 있는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의 폴 테일러 아시아문화사 프로그램 국장(왼쪽)이 전시장을 찾아 변 화백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제주도민일보 DB>

변시지 화백이 제주미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자리하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 건립이 표류하면서다. 2005년 강상주 서귀포시장이 건립 포부를 밝힌 후 2009년 박영부 시장이 구체적인 건립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후 3년째인 올해도 변 화백과 서귀포시·KBS제주 등 논의의 정점에 있는 이들은 여전히 “확정된 것이 없다”는 말을 건네고 있다. 도내 문화계에서는 ‘변시지미술관’의 향방을 묻는 이들의 문의가 계속해서 잇따르고 있다.

△ 서귀포시 첫발, 하지만

지난 2009년 서귀포시는 ‘변시지미술관’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삼매봉공원에 지상2층 지하1층 면적 990㎡(구, 300여평) 규모의 변시지미술관을 2011년까지 짓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도내 문화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이중섭미술관에 이어 또하나의 개인미술관이 건립, 서귀포시를 이끌 새로운 동력이 되어줄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특히 변 화백이 자신의 작품 500여점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작품이 몇 안 되는 이중섭미술관에 비해 콘텐츠 운용이 훨씬 자유로울 것이란 전망도 보태어졌다. 하지만 이후 서귀포시는 6·2지방선거라는 새로운 관심사 부상과 예산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사업추진에 속도를 내지 못했고 이무렵 KBS제주총국이 변 화백에게 ‘구애’의 손길을 보내면서 변시지미술관 건립은 이파전의 양상을 띠며 미궁속으로 빠져들었다.

△ 같은 듯 다른얘기

상황이 이렇자 지난해 서귀포지역 미술계와 시민사회단체(갤러리하루·서귀포시민연대·서귀포여성회·탐라자치연대)는 논평을 내고 서귀포시가 사업추진에 박차를 가해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반면 지난해말에는 KBS제주총국이 개국 60주년을 맞이해 변시지초대전을 개최, 변 화백과의 친밀함을 내보이면서 미술관 건립 향배에 더욱 궁금증이 쏠리기도 했다.  

이같은 현상은 새해가 바뀐 올해에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우선 올해 예산 15억원을 확보한 서귀포시는 오는 3월까지 변 화백과 논의를 끝내겠다는 계획이다.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오문정 계장은 “(변 화백이)KBS측과는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당미술관을 리모델링할지 인근에 신축을 할지 등에 대해 변 화백과 곧 매듭 지을 예정이다. 3월이면 결정날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서귀포시의 속내도 두루 난처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변 화백의 의중을 고루 참고하자니 예산확보에 어려움이 따르고 대안으로 거론됐던 기당미술관 리모델링은 기당 선생의 유족이 변시지미술관으로의 명칭 변경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오는 4월 신사옥 착공에 들어가는 KBS제주총국은 변시지미술관 건립이 여전히 논의중이라고 밝혔다. 김동주 제주총국장은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도 “(신사옥은)건축허가가 났기 때문에 일단 착공 먼저하고 공사과정에서 변 화백과 이사회의 승인 등을 거쳐 논의가 확정되면 설계변경을 통해 증축, 미술관을 추진할 계획이다. 4~5월경이면 결정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변 화백은 1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확실히 정해진 게 없다. 짓겠다는 사람들과 얘기해보라”고 말해 어느 쪽과의 논의에도 무게를 두고 있지 않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 우물쭈물하다 남좋은 일 시킬라

그동안 변 화백은 본보 등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줄곧 작품 기증의사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혀왔다. 또 자신의 사후에도 작품이 제대로 관리되려면 개인보다는 공공기관에, 도외지역보다는 제주에 미술관이 지어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해왔다. 문제는 500여점의 작품이 보관되고 전시될 ‘그릇’의 크기인데, 변 화백은 이 그릇의 크기와 의지 면에서 두 기관 모두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변시지미술관’이 여러곳에 분산 건립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도내 한 미술인은 “KBS제주·서귀포시 두 곳 모두와 건립이 따로 성사될 경우 제3, 제4의 변시지미술관이 계속해서 생길 수 있게 된다”며 “개인미술관은 그의 일대기가 순차적으로 나열, 정립돼야 개인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미술관에 분산 전시하는 것은 대중들에게 혼란을 주고 연구와 전시도 구심점있게 이끌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런가운데 변시지미술관 유치를 희망하는 타지역으로 변 화백의 마음이 돌아설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실제 지난 2005년, 변 화백의 특별기획전을 열었던 고양시의 당시 강현석 시장은 변 화백의 자녀를 통해 변시지미술관 건립 의지를 전하기도 했다. 서울 근교의 모 해상 관광지와 충남 등지에서도 변시지미술관 건립에 눈독을 들여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때문에 변 화백의 고향 서귀포시가 보다 적극적으로 미술관 건립 유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쏠리고 있다. 도내 한 미술인은 “서귀포하면 이중섭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이에 비하면 이중섭보다 제주와의 인연이 훨씬 남다른 변시지 선생에 서귀포시가 더욱 욕심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한국화단의 거장 변시지 선생의 위업을 생각하고 그를 자원화하는 것이 바로 요즘 행정에서 말하는 경쟁력 확보, 문화도시 구현, 또는 세계화의 실천”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KBS제주방송총국이 개국 6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변시지-폭풍, 갈 수 없는 곳 나를 따르지마라’전은 지난달 10일 개막해 지난 9일까지로 예정됐지만 관람객이 2만여명에 육박하는 등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음에 따라 이달말까지로 전시기간이 연장됐다. <제주도민일보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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