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1937~)는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도안가, 판화가, 사진가, 무대 디자이너로 활약하며, 다양한 매체와 양식을 실험해간 예술가이다. 런던 왕립예술대학의 학생이던 1950년대 말, 그는 이미 세간의 관심 대상이 됐다. 오늘날 그는 피터 블레이크와 R.B. 키타이 같은 런던의 젊은 동료 예술가들과 더불어, 영국 팝아트 운동을 이끈 선구자로 추앙받는다.

‘나는 사랑에 빠진 기분이에요’는 자필 문서와 스텐실 기법의 문자, 그라피티 내지는 손수 한 서명을 연상시키는 숫자 등의 조합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인물과 빌딩을 일부러 나이브(naive)하게 처리하는 솜씨는 도안가로서의 그의 명성에는 정면 배치되지만, 팝 아트 미술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과는 별개로, 위 그림에는 팝 아트의 대표작들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깊은 감정적 울림이 있다.

화면 왼쪽 상단 모서리에 칠해진 넓은 붓놀림은 그림에 격정과 침울함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아래쪽 인물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붓놀림은 아마도 먹구름 내지는 형이상학적 흉조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앙 인물의 흐릿한 얼굴은 보는 이를 비극 혹은 희극이 될 수 있을 법한 내러티브 속으로 이끈다. 또 일단 그의 얼굴을 본 우리들은, 빨간 심장과 하얀 초승달 같은 상징 속에서 의미를 찾아 헤매게 된다.

선과 색채의 선택적 결합으로 완성된 친근한 시각요소들은 작품을 하나의 신화 같은 경지로 올려놓는다. ‘나는 사랑에 빠진 기분이에요’는 화가의 시각적 재치와 더불어, 이상하고도 낯선 일상의 기억을 표현하는 호크니의 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발췌=「명화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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