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닷가 마을의 어느 어부와 가족들이 출어준비를 하고 있다. 마당 한쪽에 어구들이 가득 쌓여있고, 주낙낚시에 부부가 미끼를 끼우고 있다. 그 곁에서 아이들이 아버지의 손작업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사진가 강만보씨 사진.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 1'에서 발췌.
▲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시 서부두 방파제는 제주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책코스였다. 당시 제주시에 용연과 사라봉 등의 산책코스가 있었으나 서부두 방파제는 시내에서 가까워 인기가 많았다. 입구에는 노점상들이 몰리기도 했다. 어묵이나 소라, 삶은 문어에 잔술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고 어린이들을 위한 꽈배기 장사와 별 떼기 집, 요술 망원경 손수레 등
▲ 1970년대에는 쥐잡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사진은 1972년 외도동의 모습. 「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에서 발췌.
▲ 가운데로 관덕정 건물, 그 뒤로 사라봉이 보이는 1970년대 초반의 제주시 서문로 포장 공사 장면이다. 골재를 까는 작업에 주로 여성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 머리에 수건을 둘러쓴 채 일하고 있다. 옷가게, 약국, 이발관, 담배가게, 접골원 등이 길 양옆으로 보인다(국가기록원).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1」 에서 발췌.
식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산간 마을에 세워진 물탱크에서 물을 받고 있는 주민들, 동네꼬마들 모습이 재미있다. 「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 발췌.
▲ 무슨 답답한 일이 있기에 양동이를 들고 지나던 한 여인이 길거리 점쟁이에게 진지한 얼굴로 점을 보고 있다. 「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 발췌.
▲ ‘새벽 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라는 새마을노래가 들리면 주부들이 쓰레기를 들고 청소 차량으로 몰려 들곤 했다. 청소차량에 연탄재가 유독 많다. '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에서 발췌.
▲ 어린 '아이스케이크' 장수가 제 몸보다 무거운 아이스케이크 통을 메고 있다. 그 곁에서 열심히 먹고 있는 꼬마의 모습이 재미있다. 당시에는 아이스크림 값으로 돈 외에도 병이나 고무신·보리쌀 등 돈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받았다. 「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
▲ 한 노파가 갈치 도막을 꿴 꼬챙이를 햇볕에 말리려고 처마 아래 걸고 있다. 「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 발췌.
▲ 오현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시내를 행진하며 파월장병 가족돕기 모금 운동을 펴고 있다. 뒤에 교악대 모습도 보인다. 「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 발췌.
▲ 불량식품 단속. 한국부인회 제주지부 회원들이 ‘불량식품 계몽반’이란 완장을 끼고 불량식품을 단속하고 있다. 「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 발췌.
▲ 고추시장. 김장철만 되면 제주는 늘 고추 파동이 일어났고, 고추 시장은 아낙들로 북적거렸다. 「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 발췌.
▲ 제주도 첫 관광안내소 1955년도 제주시 칠성통에 ‘제주관광안내소’라는 아주 생소한 간판이 하나 걸렸다. 이동규(당시 35살)가 관광안내업을 시작한 것인데, 당시 간판을 보고 시민들은 관광안내소가 무엇이냐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한다. 산지교 쪽으로 옮겨 모슬포훈련소 훈련병들 면회를 왔던 사람들을 상대로 영업하던 제주관광안내소는 다시
제주의 여름철 별미 자리돔. 강회나 물회, 조림, 구이로 요리를 하거나 젓갈을 만들어 먹는 제주의 향토음식 중 으뜸이다. 이 작고 앙증맞게 생긴 자리돔잡이는 독특한 전래 어법으로 행해진다. 사진은 1990년대에 서귀포시 보목동에서 자리돔을 건지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국자사둘을 이용해 자리돔을 건져냈다. 이 자리돔 떼를 한꺼번에 수확한 노어부의 시선이 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