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제주와 인연 가난 퇴출에 앞장
도내 양돈업‧목축업 등 ‘근대화 아버지’

23일 오후 제주도와 60여년 인연을 끝내고 선종한 맥그린치 임피제 신부. 사진=제주도청 홈페이지.

제주도 양돈사업을 일구며 가난을 떨쳐내게 한 ‘푸른 눈의 돼지 신부’ 패트릭 J. 맥그린치(Patrick J. MgGlinchey. 한국명 임피제) 신부가 23일 오후 향년 90세로 선종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이달초 건강이 악화되면서 심근경색과 신부전증으로 제주시내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던 중 23일 오후 6시27분쯤 자신의 생애 대부분을 보낸 이역만리 섬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2014년 자랑스런 제주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조국 아일랜드에선 아일랜드 대통령상을 수여했다. 2015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25세에 사제서품을 받고 선교사로 처음 한국으로 발령을 받은 지 1년 뒤인 1954년 제주도와 첫 인연을 맺은 뒤 반세기 넘게 1차산업과 의료, 복지시설 등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였다.

23일 오후 제주도와 60여년 인연을 끝내고 선종한 맥그린치 임피제 신부. 사진=제주도청 홈페이지.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자신에게 보리밥이며 달걀을 갖다주는 제주도민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 맥그린치 신부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

고국의 가족과 친지, 교회, 독일 천주교 주교단 등에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에게서 받은 돈으로 땅과 돼지를 사서 길렀다. 1959년에는 4H 클럽을 만들어 회원들에게 양돈기술을 가르쳤다. 돼지가 새끼를 치면 2마리를 갚는 조건으로 분양도 했다.

1961년 11월에는 성이시돌목장을 개장했다. 농민들과 함께 버려진 풀밭을 개간한 뒤 소와 양을 키웠다. 주민들이 기른 돼지가 1만마리를 넘었을 때는 직접 일본, 홍콩 등지로 나가 직접 수출길을 열었다.

맥그린치 신부는 또한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병원과 경로당, 요양원, 유치원, 노인대학 등 복지시설을 운영했다. 신용협동조합 운동도 일으켰다. ‘제주도 근대화의 선구자’라는 별칭을 받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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