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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제주4.3 원인 역사인식 논란원희룡 지사, “단독정부 반대 남로당 4.3기화 무장봉기”
4.3평화재단, 1947년 3월1일 경찰 발포사건 발발 원인
원희룡 제주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언론과 인터뷰 과정에서 제주4.3 발발 원인을 3.1절 경찰 발포사건은 생략한 채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무장봉기만 언급해 논란을 빚고 있다.

원희룡 지사는 4일 오전 KBS 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윤준호 입니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사회자 질문에 “4.3은 1945년에 일본에서 해방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 남북 분단하고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이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극심한 이념 대립이 있었죠. 남북 간에도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요”라며 “그 과정에서 1948년에 남한 단독 정부 수립해서 5월 10일에 총선거 방침이 정해지니까 이에 대해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당시에 남조선노동당이죠. 이쪽에서 4.3을 기화로 해서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라고 답했다.

원 지사는 이어 “여기까지는 이념 충돌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 과정에서 소위 남노당의 무장비들은 군인이나 경찰 가족들을 공격해서 죽였고 그다음 진압작전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군경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10월에 계엄령이 내려지고 그리고 그 후에 4년간 진압작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이 많이 희생됐죠”라며 “그래서 양쪽에 의한 희생자가 전부 해서 3만 명 정도가 희생되는 그런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 바로 4.3입니다”라고 밝혔다.

또 사회자는 “4.3이 이렇게 70년이나 됐지만 사실상 그동안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되어왔다. 양지로 나온 것이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4.3 진상규명 특별법 만들면서인데 그동안에 이야기되는 것 자체가 물론 우리 지사님 어렸을 때도 제주에서 학교 다니면서도 이것 이야기 못했었죠, 그런 상황이었죠?”라고 물었다.

이에 원 지사는 “저는 개인적으로는 큰아버지 가족 네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제 어릴 때도 물론 가족사로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금기시되었죠. 왜냐하면 이게 발단은 우선 남노당의 무장봉기에 의해서 발단이 되었거든요”라며 “그렇다 보니까 그 과정에서 실제 무장봉기의 주동자나 핵심 관여자들도 섞여 있는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 보니까 특히 이승만 정부라든지 이어진 군사정권이나 이런 데에서는 4.3은 결국 공산주의 내지는 북한과 연결된 그런 색깔이 많이 칠해지면서 금기시되고 또 관련된 사람들이 감시당하고 연좌제로 불이익을 보고 그랬죠”라고 답했다.

지난 3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리는 70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원 지사는 또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3.1절 경찰 발포사건을 생략했다.

원 지사는 3일 오후 tbs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홍준표 대표가 4월 3일이라는 특정한 날짜 때문에 이런 글을 올렸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고 결국은 4.3을 바라보는 기본관점의 문제 아니겠습니까?”라는 사회자 질문에 “무장대에 의해 발단이 된 건 맞다”고 설명했다.

원 지사는 답변에서 “4.3에 들어가면요. 실제 그 1948년 4월 3일에 당시 정말 그 당시 남로당 김달삼 지도부에 의한 이제 경찰서 습격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무장대에 의해 가지고 일단은 발단이 된 건 맞거든요”라며 “근데 이제 진압과정 그리고 10월 달에 계엄령이 내려지고 진압하는 과정에서는 예를 들어서 무장대에 대해서만 이게 그 공권력이 발의된 게 아니라 이제 협조를 안 한다든지 아니면 가족 중에 누가 없다라든지 아니면 살려고 피신해 있는 사람들을 그냥 다 싸잡아서 학살을 한다든지, 재판으로 넘긴다든지 이런 부분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런 점에 대해서는 국가 공권력의 어떤 무자비한 남용에 의한 학살로 사건이 그렇게 진행이 되어 간 거죠”라고 답했다.

원 지사는 두 인터뷰 내내 3.1절 민간인들을 향한 경찰 발포사건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제주4.3평화재단이 발행한 ‘4.3이 머우꽈?’라는 제목 책자에 따르면 3.1절 발포사건은 1947년 3월 1일 관덕정 앞에서 열린 ‘3.1절 기념대회’에 참가한 도민들을 향해 경찰이 총을 쏜 사건이다.

이때 제주도민 3만여명은 현재 제주북초등학교 앞에서 ‘3.1정신으로 통일 독립 전취’ 등 구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기마경찰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어 다치는 사태가 발생했다. 말발굽에 다친 아이를 그냥 두고 가는 기마대를 향해 흥분한 군중들이 항의했다.

시위대가 빠져나갈 즈음, 기마경찰이 급히 경찰서 쪽으로 달려간 다음에 제주경찰서 망루에서 미군정 경찰이 구경꾼들을 향해 총을 발포했다. 이 결과 민간인 6명이 죽고, 8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책은 3.1절 경찰 발포 사건이 제주4.3 도화선이 됐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제주4.3 전문가는 “극우 세력들은 3.1절 발포사건을 숨기려고 한다. 그렇게 해야 공산폭동을 합리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3특별법을 제정할 때 가장 큰 쟁점은 4.3발발 시점을 3.1절 발포사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원인 없는 결과가 없는데 원인을 빼 버린 채 주장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올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전문가는 “제주도민 탄압 국면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앞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4.3추념식에 참석한 것도 언급하지 않더니 4.3에 대한 원 지사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병근 기자  whiteworld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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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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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dhymd 2018-04-08 16:48:37

    원희룡 지사님 말씀이 옳음.
    제주 4.3사건은 박헌영의 남로당 폭도들이 자유대한민국 건국과 5.10총선을 방해하기 위해서 일으킨 무장 폭동입니다. 그 결과 일부 선거구는 무효가 되었지요. 폭도들은 제주지역 24개 지서 중 12개 지서를 동시에 습격해 공격하고 방화해서 도주했습니다. 중산간 부락을 습격해 소, 말, 식량을 약탈하고 무고한 주민을 죽창으로 살상했고, 나의 백부님도 폭도의 죽창에 난자당해 억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이 경우엔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합니까? 제주4.3공원의 폭도위패를 철거 하십시오. 김대중 대통령도 인정했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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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돌이 2018-04-06 09:21:38

      기마대를 향해 시민들이 돌을 던진건 오 ㅐ얘기 안하냐?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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