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ju&joy 여자의 광] 가꾸기

새 직장? 안돼도 그만! 새 남자? 생기면 좋고! 새 핸드백? 무조건 사수!
영화 「쇼퍼홀릭」의 그녀 레베카는 고해성사하듯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지칠줄 모르는 그녀의 쇼핑 본색. 멋진 남자보다 그녀를 설레게 하는 것은 쇼핑. 남자가 광택을 뿜는 ‘신차’에 희열을 느끼듯 여자는 자신만의 예쁜 옷·구두를 발견할때 설렘을 느낀다.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예뻐지고 싶다. 예뻐지고 싶은 여자는 오늘도 바쁘다.

영화 쇼퍼홀릭 포스터
△쇼핑에 빠지다
“이번 겨울 머스트 해브는 오토바이에 어울릴 것 같은 라이더 가죽 재킷이군. 어깨가 강조된 파워슈트와 어깨와 목 부분을 반짝거리는 비즈로 장식한 비주얼 재킷과 니트도 한번 찾아봐야겠어. 역시 여기도 라이더 저기도 라이더네. 올해도 유행예감, 모피 베스트(조끼)는 가격도 많이 착해진 거 같은데 하나 질러? 가만, 이게 동그라미가 몇 개야, 허걱. 후드만 있는 머플러도 많이 나왔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여자는 틈틈이 패션지와 인터넷을 뒤져 이번 겨울의 ‘머스트 해브’(필수품)가 무엇인지를 공부했다.

태풍처럼 휘몰아치던 일 더미가 잠깐 소강상태를 보이던 점심시간 여자는 빛의 속도로 옷가게로 직행했다. 일이 끝나면 가게들도 문을 닫기 때문에 암행 쇼핑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주어진 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 1차 목표는 아이쇼핑이다. 남들은 점심시간에 성형 수술도 한다는데 아이 쇼핑쯤이야.

그런데 사고싶은 게 너무 많다. 당장 필요한 건 아닌데 왜 이렇게 사고픈건 많을까? 여자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회사로 돌린다.

회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여자는 여운을 달리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탐색 2시간째. 광채가 번쩍이듯 여자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은 아이템이 있으니. 바로 구두. 남자보다 아찔한 구두와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하이힐을 빼놓고 패션을 논하는 건 불가능하다. 별다른 치장 없이도 킬힐 하나면 스타일리시한 패션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 여자는 100켤레가 있어도 잘 빠진 구두라인을 보고 있으면 참을 수 없는 구매욕이 발동한다. 정신없이 ‘장바구니 담기’ 클릭 신공을 펼친다. 순간, 지난달 카드값이 떠올라 손이 후덜덜 거렸다. 하지만 이내 예쁜 구두를 신고 거리를 활보할 생각을 하니 여자는 설레임이 물밀듯 밀려온다.

이쯤되면 남자들은 으레 질문을 던진다. ‘여자들은 왜 그렇게 쇼핑을 좋아하나. 옷이나 가방, 구두가 다 거기서 거기지. 아무거나 입으면 안되나’

여자가 쇼핑을 하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이렇다. 새로운 것과 유행에 민감한 여자들은 새로운 트렌드를 읽고 감각을 익히고 싶어한다. 친구들과의 모임날이나 특별한날 여자들은 다른 사람의 패션과 헤어에 예민할수 밖에 없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남자는 인정받기 위해 살고, 여자는 관심을 받기 위해 산다. 관심을 통한 경쟁에서 승부심리가 작용하며, 주변과의 경쟁에서 자신의 위치 상승을 기대한다. 또한 일부는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약간은 무리해서라도 내가 원하는 무엇을 얻었을때의 성취감이라고 해야할까.

여기서 잠깐 1. 한번쯤 남성과 여성의 쇼핑 모습이 다른 이유가 궁금한 적이 있을 것이다. 연구결과가 있다.

한 매장 앞에서 한 남성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서성댄다. 십중팔구 매장 안에는 그의 부인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매장을 훑고 다닌 지 한두 시간이 지났건만 살 물건을 결정하려면 아직 멀었다. 남성은 투덜댄다. ‘나 같으면 벌써 물건 사고 집에 갔겠다.’ 여성은 생각한다. ‘그거 하나 참을성 있게 못 기다리나’

미국 미시간대 진화심리학자 대니얼 크루거 교수팀은 이 같은 남녀의 쇼핑 행태 차이가 남성은 사냥, 여성은 채집을 맡았던 원시시대의 습성이 지금까지 유전자에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사려고 했던 것만 구입해 바로 나오는 남성의 쇼핑 행태는 원시시대에 사냥감을 발견해서 죽인 뒤 바로 어깨에 짊어지고 돌아오는 사냥 행태와 유사하다.

반면 사려는 물건의 색깔, 스타일을 꼼꼼히 따지고 끊임없이 점원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물건을 고르는 여성의 쇼핑 행태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가장 잘 익고 때깔 고운 열매를 찾으려 덤불을 뒤지던 원시시대 채집 행태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2. 여자가 평생 입어보는 옷은 몇 벌일까. 최근 영국의 한 의류업체가 여성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달 평균 4번 의류·신발 매장을 찾으며, 그때마다 10벌의 의류와 신발을 신어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계산하면 한달에 옷 40벌, 1년에 480벌에 달한다.

평균 쇼핑 기간을 45년으로 지정하면 2만1000벌에 이른다. 쇼핑할 때마다 실제로 구매하는 물건은 약 5벌 정도이며, 합산하면 1년에 240벌, 45년에 1만560벌이다. 조사대상 3000명 중 84%는 ‘아이 쇼핑’을 목적으로 쇼핑에 나서지만 결국 물건을 구매해 집으로 돌아온다고 답했다.

이들이 산 옷 중 평균 1벌은 평생 입어보지도 않은 채 옷장에 쟁여두며, 막상 샀지만 집에서 입어보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답한 여성은 40%로 나타났다.

△외모는 경쟁력?
주말 여자는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여자는 손담비 몸매를 만들어줄 몸짱 요가학원에 가야하고 송혜교 피부를 만들어줄 피부관리숍도 들러야 한다. 미인박명이란 말을 실감한다. 예뻐지기 위해선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취업 면접을 앞둔 여자는 요즘 성형도 고민중이다. 여자는 이미지가 차갑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터라 성형을 하면 달라질까 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피부미용·몸매관리·성형 등 외모가꾸기는 여자에게 빠질 수 없는 필수 코스. 취업성형, 다이어트열풍 등 ‘외모가 경쟁력’인 사회에서 여자들은 점차 외모가꾸기에 몰두한다.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가들은 외모가꾸기가 여성의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외모 컴플렉스에 빠진 여성에게 ‘당신은 아름답다, 가치있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장기간의 상담을 거쳐 자신감이 생겨도 치료후 밖으로 나가면 다시 외모이데올로기에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세상이 만들어 놓은 사랑받는 여성 이미지에 자기를 맞춰가면서 외모를 관리하는 게 어느정도 자존감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것.

‘루키즘(lookism)’.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가 인종, 성, 종교, 이념 등에 이은 새로운 차별 기제로서 ‘외모’를 지목해 사용한 용어다. 용모가 개인간 우열과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잣대로 부각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작 루키즘, 또는 외모차별주의가 극단화하고 있는 곳은 우리 사회다. 잘난 외모는 경외의 대상이 되고, 못난 외모는 공공연히 비하의 대상의 된다. 이런 풍조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자의 외모가꾸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오경희 기자 noke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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