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여성, “무서웠고, 저항할 수 없었던 내가 싫었다”
여성인권연대, 기자회견...20대 여성 편지 대신 낭독
성폭력 피해사례 온라인 창구 개설, 피해자 지원 계획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제주여성인권상담소.시설협의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제주여민회가 19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미투선언 지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제주시내 한 신협에서 근무중이던 20대 여성이 직장 동료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며 미투를 공식 선언했다. 이민정이라는 가명을 쓴 이 여성은 3쪽짜리 편지에서 당시 상황과 심경을 구체적으로 적어 공개했다.

제주여성인권연대는 19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민정(가명)씨가 쓴 편지를 대신 공개했다. 이 편지에는 당시 상황과 이씨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민정씨는 지난달 23일 저녁 사건 발생 직후 “무서웠고, 저항할 수 없었던 제 자신이 너무 싫었다”고 적었다. 이 씨는 “2차 장소로 도착한 노래 주점에서는 20대 어린 여직원들이 60대 이상의 늙은 남자 이사들과 1대1로 춤 추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적었다.

그는 “피해 당시 저항을 못한 제 자신의 한스러움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우울증은 깊어지고, 한숨과 눈물은 늘어갔다. 스스로 죄인 같다는 착각 마저 들었다”고도 적었다.

그는 회사 측이 강제추행에 따른 2차피해 발언도 지속했다고 밝혔다.

그는 “안정적인 회사생활의 걱정을 물었더니, 엉뚱한 회사 이미지만 생각하는 ‘언론에 알리지 말라’는 강조에 씁쓸했다”며 가 겪은 일에 대한 상처를 보듬어 주는 이는 없었다”고 말했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제주여성인권상담소.시설협의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제주여민회가 19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미투선언 지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강제추행에 따른 2차 피해 발언은 계속 됐다. 저는 회사 내 다수의 남성 간부들에게 ‘개인면담’의 명목으로 붙들려 피해 사실을 기계적으로 늘어놨다”며 “성폭력에 따른 매뉴얼도 전혀 없었다. 겨우내 용기를 내기 전까지 마음 한 켠에 자리 잡혔던 수치심도 반복되는 피해사실 언급에 무뎌져 갔다”고 토로했다.

그는 남성 간부들이 입을 모아 ‘왜 저항하지 않았지’, ‘왜 소리치지 않았지’라고 피해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저에게는 강요로 받아들여지는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다. 회사를 다니려면 트라우마로 남을 이 일을 덮어두고 조용히 있어야 하고, 억울함을 해결하려면 회사를 나갈 수 밖에 없었다”며 “그리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퇴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어떤 간부는 저에게 이런 발언도 늘어놓았다. ‘우리 회사의 보수적인 분위기 상 만약 너가 고소를 진행하게 될 경우 너는 퇴사를 해야 할 상황이 올 것이다. 전에 어떤 여직원도 회식에서 남성임원의 무릎에 앉아 술을 마신일도 있지만, 걔는 아무렇지 않게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 회사를 계속 다니려면 참는 것도 방법이다’는 말도 들었다”며 “회사 간부가 강제추행이 별 일 아니듯 쉽게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고 놀라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외에도 ‘좁은 제주지역사회에서 외부에 알려지면 좋을 것 없다’, ‘고소하지 말고,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해라’, ‘우리는 보수적인 회사다’ 등의 발언을 돌아가면서 들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제주여성인권상담소.시설협의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제주여민회가 19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미투선언 지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제주여성인권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피해자가 작성한 편지를 공개하고 미투선언을 응원했다.

인권연대는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경험을 적은 글을 통해 오늘의 말하기가 제주사회에서 침묵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보냈다”며 “제주지역 #미투선언 지지 기자회견을 통해 제주에서도 성폭력 피해 경험 말하기가 시작 됐음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여성인권연대 측은 이에 따라 성폭력 피해 사례 온라인 접수창구(jejussh@hanmail.net)를 열고 피해자들 심리적 지원뿐만 아니라 법적 대응을 요구하는 사례에 함께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인권연대 측은 “미투선언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 성찰과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더 이상 성폭력 피해 경험을 말하고자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그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성폭력 근절을 위해피해자 인권을 위한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며 “제주지역에서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피해자들의 용기에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고 응원했다.

피해여성이 작성, 여성인권연대가 공개한 편지.
피해여성이 작성, 여성인권연대가 공개한 편지.
피해여성이 작성, 여성인권연대가 공개한 편지.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제주여성인권상담소.시설협의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제주여민회가 19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미투선언 지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은 성지은 제주여성상담소 상담원이 피해자 편지를 대신 읽고 있는 모습.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제주여성인권상담소.시설협의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제주여민회가 19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미투선언 지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제주여성인권상담소.시설협의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제주여민회가 19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미투선언 지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제주여성인권상담소.시설협의회, 제주여성인권연대, 제주여민회가 19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미투선언 지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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