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 남자들의 '광(狂)'이야기 <야구>

# 제주촌놈, 난생처음 사직구장 찾다

제주에서 살던 야구광이 난생 처음 롯데 자이언츠 홈구장인 부산 사직구장을 찾았다. 난 야구를 좋아하지만 특히 롯데 자이언츠의 광팬이다. 제주에서 열렬히 보냈던 애정의 추파를 직접 구장을 찾아 전할 수 있게 됐으니 이만한 감동이 있을까.

그야말로 ‘성지순례’다. 광(狂) 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뿜어낼 수 있는 광적 열기는 TV화면 크기에 불과했다. 결국 이건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할 예의가 아니다 싶어 사재(?)를 털어 부산 사직구장으로 ‘위대한 발걸음’을 옮긴다.

지하철을 타고 사직구장이 있는 ‘종합운동장’역에 다다르면 방송이 흐른다. “안녕하십니까, 롯데 자이언츠 강민호입니다. 지금 도착할 역은 롯데자이언츠의 홈 구장이 있는 종합운동장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부산갈매기를 함께 부르며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어머나 이게 웬떡. 머리에 자이언츠 모자를 눌러쓰고 있던 나는 친숙한 목소리에 흠칫 놀란다. 이제야 실감한다. 여기가 ‘구도’ 부산이구나!

지하철 입구부터 부산 사직구장까지 이어지는 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주전부리의 천국이다. 10m마다 치킨을 파는 노점상이 줄지어 섰다. 맥주와 생수는 물론이고 응원도구를 파는 상인도 만날 수 있다. 잘못하면 야구 보기전에 큰돈 나갈 수 있다.

어느덧 사직구장의 위용을 만나게 됐다. 순간 울컥했다. 사직구장을 떠 받치고 있는 거대한 기둥마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사진이 붙어있다. 로이스터 감독을 시작으로 손민한, 이대호, 조성환 등. 눈물이 안날 수가 없다. 카메라가 바빠졌다.

급히 표를 끊고, 들어가려던 찰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판매상이 보인다. 바로 ‘신문’. 신문지 응원으로 대표되는 사직구장의 응원문화를 반영하는 만큼 여기저기 신문 판매상이 보인다. 나 역시 신문지 한 부를 샀다. 부산 지역신문은 야구장에서만 잘 팔아도 경영은 끄떡없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찾은 경기는 롯데와 두산전이었다. 이미 관중석이 가득찼다. 관중들 손마다 치킨이니 족발이니, 맥주가 하나씩은 들렸다. 시원한 야외에서 야구보며 맘껏 먹고 소리지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제주에 없는 문화가 부럽다.

경기장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덕에 선수들이 바로 눈앞에서 보인다. 와! 이대호와 강민호 선수가 내 눈 앞에서 몸을 푼다. 김현수와 김동주 선수도 보인다. 경기가 시작되며 어느덧 그라운드는 달아오르고, 롯데의 전매특허인 열띤 응원이 시작된다.

막상 야구장에 앉아있으면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고민이다. 내 앞에선 선수들의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가 이어지지, 뒤에서는 신문지를 흔들고, 연신 ‘부산갈매기’와 선수들의 응원가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장관이 펼쳐진다. 눈이 어지럽다. 바삐 왔다갔다하면서 현장을 모조리 기억하려 애쓴다.

롯데의 응원은 사실 매회가 교체되는 시간이 더 재밌다. 휴식 시간 사이마다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는데, ‘키스타임’ ‘댄스타임’ ‘프로포즈 타임’ ‘치어리더 타임’ 등 그냥 앉아만 있어도 볼거리, 즐길거리를 알아서 갖다준다.

7회가 시작될 무렵, 서서히 관중석이 붉게 물든다. 사람들이 주황색 쓰레기 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관중들 손을 거쳐 하나씩 전해지는 봉지는 순간 내게 까지 이어졌다. 나 역시 안 쓸 수 있나. 요리조리 봉지를 매듭지어 머리에 뒤집어썼다. 다행히 맞았다.

경기는 접접을 벌인 끝에 9회말 손아섭의 극적인 2점짜리 역전홈런으로 롯데의 승리로 끝났다. 워낙 극적으로 승부가 이어지다보니 관중들의 광기가 평소보다 몇 배 더하다. 나 또한 응원의 열기에 심취하다보니 어느새 옷이 땀에 젖었다. 목도 쉬고, 거추장스러울 거라 치킨 등 주전부리를 먹지 않았던 쓸데없는 호기 때문에 체력이 바닥났다. 그제서야 수긍한다. 왜 지하철 역부터 치킨을 사가라는 분들의 외침이 높았는지. 9회까지 버티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

세 시간 가량 미친듯한 사직구장발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은근히 허탈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영 시원섭섭하다.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관중들도 같은 마음인지 선수들이 나오는 입구를 따라 줄을 서있다. 워낙 많은 이들이 모인지라 쉽게 낄 수 없다. 나도 슬슬 짧은 만남을 이별할때가 왔다. 언젠가 또 만나겠지. 덕분에 나도 즐거웠다. 근데 이건 뭐지. 하루 더 머물고 싶은 이 충동은.

<제주도민일보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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