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후생복지회 노동자들, 하루 아침에 직장 없어져 ‘날벼락’
1990년 설립 후생복지회, 사실상 고용자인 제주도가 ‘해고통보’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한라산후생복지회 소속 노조원들이 지난 18일 오전 제주도청 앞에서 후생복지회 해산을 철회하는 내용을 담은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 적자를 이유로 후생복지회 해산이 당연시 됐다. 한라산 탐방객 수 감소가 주요 적자 원인인데 이를 모두 노동자들에게 덤터기 씌우고 있다. 제주도는 우리를 사람이 아닌 노예로 취급한 것이나 다름 없다”

1990년 1월 설립된 한라산후생복지회가 하루아침에 해산되면서 길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사실상 고용주 역할을 해온 제주도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노동자들은 매일 같이 제주도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며 후생복지회 해산을 철회하고, 해고한 노동자들을 제주도가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동훈 민주노총 제주지부 한라산국립공원후생복지회 분회장은 최근 <제주도민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이래서 해고는 살인이라고 하나보다”며 “끝까지 가겠다”고 굳은 의지를 밝혔다.

김동훈 분회장은 “배신감이 든다. 우리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났다. 하늘이 무너진 느낌”이라며 “어제까지 웃으면서 같이 일했던 동료가 나를 해고 하는데 찬성했다는 생각이 들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이래서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가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라산국립공원 후생복지회는 지난 10일 해산총회를 열고 전체 회원 74명 가운데 3/4이 해산에 찬성표를 던졌다.

한라산후생복지회 역사는 지난 1990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소속 직원들 복지 차원에서 운영하는 구내식당, 한라산탐방객들에게 편의제공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진달래밭과 윗세오름 대피소, 어리목광장 매점 등에서 물품 판매, 한라산 등반 안내 등 10명의 후생복지회 조합원이 활동을 해왔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김동훈 분회장이 지난 18일 오전 제주도청 앞에서 후생복지회 해산을 철회하는 내용을 담은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이 후생복지회는 사실상 제주도의 업무지시를 받아왔다는 것이 노동자들 주장이다. 김동훈 분회장은 “형식상으로는 후생복지회 운영위원장이 고용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운영위원장은 제주도지사가 임명한 공무원”이라며 “그리고 그동안 각종 업무지시, 인사발령도 공무원이 해왔다. 휴가신청도 공무원에게 결재를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김 분회장은 이어 “공문도 제주도의 것을 그대로 써왔고, 시설도 전부 제주도 소유이다. 채용공고도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홈페이지에 해왔다. 업무도 ‘산악지 근무 직원 복지, 탐방객에 대한 편의제공, 한라산 홍보 및 계도, 재난객에 대한 위로금 지급 등 지방정부인 제주도가 해야하는 업무”라며 “하는 일도 제주도 업무이고, 시설과 장비도 제주도 소유다. 업무지시도 제주도 소속 공무원이 하면 당연히 제주도가 직접 고용주가 돼야 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후생복지회 소속 10명의 노동자들은 2016년까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채 일을 해 왔다.

김 분회장은 “2016년까지 최저임금도 못받았다. 후생복지회 운영규약을 보면 기본급은 당해연도 최저시급으로 한다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후생복지회는 운영규약을 어기고 기본급에 다른 수당까지 합쳐도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금액을 임금으로 지급했다”며 “휴일수당을 비롯해 각종 수당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다보니 1인당 3년 치 체불임금이 최소 1천만원이 넘게 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달래밭과 윗세오름에 근무하는 고지대 근무자들은 퇴근 후에도 집에도 못가고 아무도 없는 진달래밭과 윗세오름에서 당직근무를 해왔다”며 “눈이 많이 오는 겨울철에는 10일 가까이 고립돼 집에 못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노동조건이 안좋았다. 탐방객들이 몰리는 점심시간에는 점심도 제때 못먹으면서 일해왔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은 조합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모르쇠’였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김동훈 분회장이 지난 18일 오전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분회장은 “제주도는 자기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고, 후생복지회 하고만 얘기하라고 했다. 후생복지회는 일당제를 월급제로 전환하라고 했더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후생복지회 운영을 안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며 “진달래밭과 윗세오름 고지대 근무자들에게 당직비가 많이 든다고 매일 출퇴근 시키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최저임금 받으려고 매일 5시간씩 걸어서 출퇴근하라는 얘기는 그만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또 “노조가 부분파업을 하니까 사태해결 할 생각은 않고 구조조정안에 도장을 찍으라는 얘기만 돌아왔다”며 “제주도와 후생복지회에게 우리 노동자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를 노예처럼 부려먹어 왔는데 우리가 노조를 만들고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얘기하기 시작하니까 어이없고 불쾌하다는 반응이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후생복지회 노동자들은 제주도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벌이고 있다.

김 분회장은 “현재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진행 중”이라며 “형식상으로는 후생복지회가 사용자이다. 하지만 후생복지회는 제주도의 업무를 수행하는 하부기관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김 분회장은 “시설제공부터 업무지시, 인사발령, 복무관리 등 전부 제주도지사가 임명한 공무원이 하고 있기 때문에 진짜 사용자는 제주도”라며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이러한 사실을 밝히기 위한 소송이다. 후생복지회가 해산되긴 했지만 제주도 역시 피고로 돼 있기 때문에 소송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김동훈 분회장이 지난 18일 오전 인터뷰를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제주도가 후생복지회를 해산시킨 의도가 ‘직접고용을 미연에 막기 위함’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김 분히장은 “현재 진행중인 근로자지위확인소송 결과에 따라 제주도가 사용자라는 판결이 나면 제주도는 후생복지원들을 전부 직접 고용해야하는 상황”이라며 “그리고 체불임금도 제주도가 직접 지급해야 한다. 제주도는 아마 이런 문제 때문에 공익성도 뒷전으로 한 채 해산을 강행 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또 “후생복지회가 해산하면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니까 우리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포기할 거란 기대를 한 것 같다”며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은 후생복지회 해산 반대와 제주도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 분회장은 “후생복지회가 해산되면 진달래밭, 윗세오름, 어리목 매점을 폐쇄할 수밖에 없다. 매점을 폐쇄하게 되면 당연히 탐방객에 대한 편의제공이 중단되고, 이로 인한 모든 불편은 탐방객에게 돌아간다”며 “게다가 십수년을 일해온 노동자들도 하루아침에 해고되어 일자리를 잃게 된다. 후생복지회 해산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되면 탐방객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노동자 일자리를 잃게 만드는 후생복지회 해산은 당연히 반대해야 한다”며 “그리고 이번에 해고된 후생복지원들의 진짜 사용자는 제주도이기 때문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결연한 입장을 밝혔다.

김 분회장은 “1990년 후생복지회가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적자가 발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적자를 이유로 해산했다”며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제주도는 후생복지회 해산과 이에 따른 매점 폐쇄로 탐방객 불편이 예상 됐음에도 이에 대한 대책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의 해고와 관련해서도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후생복지회 해산에서 보여준 논리대로라면 제주도는 앞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공익성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많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한라산후생복지회 소속 노조원들이 지난 18일 오전 제주도청 앞에서 후생복지회 해산을 철회하는 내용을 담은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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