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풍각쟁이를 따라 다니는 것이 본업인지라 라브랑스에서 열리는 보름간 정월잔치에서 라마댄싱을 볼 수 있는 법무회(法舞會)가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그 당시의 필자로서는 라마댄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더구나 중국 당국에서 의례를 금지하여 두 번씩이나 허탕을 치는 바람에 참의식과 라마댄싱에 대한 호기심이 바짝 오른 상태였다.

샤허의 추위는 고지대 혹한의 악명에 걸맞게 쌩쌩하고도 시퍼런 냉기가 온 몸을 조여 왔다. 땅은 얼어붙어 양말을 겹겹이 신고 털신을 신어도 발끝이 떨어져 나갈듯이 시린데, 잔인하게시리 라브랑스의 참의례를 보기 위해서는 동토의 맨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어야만 했다.

그나마 제대로 보려면 일찍 가서 앞자리를 잡아야 했으므로 동이 트자마자 사원 마당으로 갔다. 그때가 여덟시 무렵,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마당의 반을 채우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승단(僧團)의 악사들이 등장한 시간은 열시가 넘었으니 그 추운 땅바닥에서 두 시간이 넘도록 빈 마당만 쳐다보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 저만치서 뭔가 심상찮은 웅성거림이 보인다. 엉덩이를 들썩 들썩 하며 깃발이 보이는 쪽을 향하여 황새목을 하였다. 그런데 말을 탄 기수가 한사람 삐죽 나오다가 도로 들어가 버린다. 한참 후에 다시 몇 사람이 나오다가 또 들어가 버린다. 궁금해서 견딜 수 없지만 자리를 떴다하면 이내 뺏겨버릴 판이니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다. 왜 그리 등장하는데 약을 올리는지 참으로 야속하고도 감질나던 그날 아침의 기다림이었다.

드디어 나타난 등장 퍼레이드. 말을 탄 기수가 네 사람이요, 붉은 술이 달린 모자에 멋지게 차려입은 수십 명의 마을 유지들. 역시나 약방에 감초처럼 군중을 내쫓는 호법승려들과 호랑이까지. 두 사람이 호랑이 탈 안에 들어가서 어찌나 심하게 옆발 차기를 하는지 군중들은 호랑이만 가까이 오면 달아나기 바빴다.

드디어 나팔 소리가 들리더니 거대한 독수리 모양의 법복을 차려입은 승려 두 사람이 악대봉을 들고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따라 나오는 두 대의 둥첸(큰 나팔)은 한 사람이 들 수가 없어 또 한사람이 나팔 끝에 끈을 묶어 울러 메었다. 이어서 작은 나팔을 부는 악사 그 뒤에 수십명의 승려들이 응아(북)와 롤모(자바라)를 들고 등장하는데 그 광경이 어찌나 장엄한지 가슴이 콩닥거렸다.

모든 등장인물들과 악대가 자리를 하자 2층의 회랑에 간쑤성 성장(省長)을 비롯해 이 지역의 장로들이 배석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라브랑사원의 법태라마가 등장했다. 일제히 모든 군중들이 라마에게 경의를 표하자 라마는 하얀 가탁을 내렸다. “아, 한국의 살푸리 수건?” 이렇게 장난스런 감탄사를 던지지만 사실 그 장면이 얼마나 성스럽고 신비로웠는지 모른다.

법태라마가 자리에 앉자 대경당 홀에서 두 명의 동자승이 악승들의 반주에 맞추어 등장하였다. 머리에는 해골 탈을 썼는데 한국의 꼭두각시 춤의 무복과도 유사한 흰색 바탕에 색동 무늬 옷을 입은지라 앙증맞은 요정과도 같다. 동행한 칭하이 방송국의 프로듀서 만당리에 선생에게 물어보니 호법신 중에 막내 ‘겅을와’란다. ‘겅을와 춤’은 두 명씩 네 명이 춤추는데 동작은 느리고도 단순하지만 차려입은 복색이며 아기 같은 동작이 한국 어린아이들이 추는 ‘꼭두각시춤’을 보는 듯했다.

어느새 몇 시간이 흐르자 생리적 현상이 발동. 워낙 이른 아침부터 앉은 터라 한번쯤은 화장실을 가야 할 텐데 빽빽이 둘러선 군중을 어떻게 뚫고 나가야할지 난감했다. 공연장에서 압사사고가 났다는 말은 들었어도 화장실에 못가서 일 쳤다는 기사는 못 봤는데 이걸 어쩌나.

“잠깐만요. 잠깐만요. 저 급해요.” 아무리 소리쳐도 꽉 끼어있는 사람들이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다. 이러다가 김유신의 여동생처럼 거시기로 이 마당을 다 적셔버리는 것 아냐? 순간 머리가 쭈뼛해졌다. 하늘이 무너져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더니 어떻게 그 빽빽한 틈을 빠져 나왔는지 하여간 아찔한 위기를 면했다.

볼 일을 끝내고 행여나 중요한 순서를 놓칠세라 허리춤을 올려가면서 허둥허둥 되돌아오니 야크탈, 사슴탈, 빨강, 주황, 녹색, 청색 사자탈의 춤을 추고 있었다. 이들의 춤사위도 ‘겅을와’와 같이 느리고 담담한 춤사위가 반복되는데 다들 손에는 해골과 금강저를 들고 춤춘다. 춤 이름은 화우(华吾)라는 호법 영웅들의 춤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검은 모자를 쓰고 흑포로 얼굴을 가린 샤낙이 20명 등장하였다. 그때 2층 회랑에서 법태라마가 으뜸 샤낙에게 가탁을 내렸다. 바람결을 타고 나폴 거리며 떨어지는 가탁은 마치 천상의 빛이 땅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샤낙춤의 동작도 화우들의 춤과 거의 유사한데 춤에 소요되는 시간은 훨씬 길었다.

춤을 반주하는 것은 대부분 나팔과 북, 자바라이고 범패는 선율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저음의 몇 마디였다. 춤을 마치고 마지막 행렬을 하느라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 나간다. 그런데 나의 신발 바닥이 얼음 땅에 달라붙었는지, 팔꿈치가 옆구리에 붙은 것인지 몸이 움직이질 않아 그 자리에서 꼬꾸라지고 말았다. 알고 보니 캠코더가 움직이지 않도록 꼼짝을 않고 촬영을 하였더니 몸이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사람이 바위도 되고 망부석도 되는 옛날이야기가 헛것이 아님을 실제로 체험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날 밤에 잠을 자려니 종일 들었던 나팔소리가 귓전에 붕붕거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토록 혹독했던 라브랑스의 라마댄싱 촬영, 그 힘든 시간들 덕분에 지금의 이 글들이 오히려 달콤하게 풀려 나가는 것 같아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된다.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03호(11월29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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