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없는 결혼식', '미니멀 웨딩' 등 새로운 문화 추세
"편안한 분위기속 평생 잊지못할 추억으로" 점차 속도

한 커플의 결혼식장에서 하객이 축하무대를 펼치고 있다.

"아내가 저 몰래 할부로 백을 사도 한 번은 눈감아 주겠습니다"
"남편이 숨겨놓은 비상금을 발견해도 금액에 따라 모른척 하겠습니다"

최근 결혼하기 좋은 계절 가을. 제주도의 광활한 바다가 한 눈에 보이고 잔디가 깔린 한 호텔의 뒷마당에서 50여명 가량의 가까운 하객만을 초대한 A커플의 결혼식이 진행됐다.

이 커플은 하객들 앞에서 재치있는 '혼인서약서'를 읽어내려가며 결혼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혼인서약이 끝나자 부모님, 친구들이 손수 쓴 축하의 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평생 서로만을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겠습니까?"하는 등의 흔한 주례사는 없었다.

두 사람의 성장 과정을 잘 알고있는 하객들만 모여있는 결혼식이라 자연스러운 공감대가 형성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하객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날 결혼식을 올린 A커플은 가까운 지인만 모신 주례없는 결혼식을 한 이유에 대해 "평소에는 연락도 잘 하지 않다가 결혼식 때가 다가오면 갑자기 연락해 초대를 한다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다"며 "정말 우리 둘을 진심으로 축복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결혼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결혼식에 참석한 A커플의 대학 동기 김모씨는 "평소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을 하면 부조를 하고 형식적인 축하 인사 몇마디를 하고 자리를 뜨는 것이 다반사였다"며 "하지만 A커플의 결혼식은 하객들끼리도 대부분이 친해서인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오랫동안 지난 추억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 동창회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날 신랑측 부모는 "우리가 결혼할 적에는 상상도 못해본 일"이라면서도 "주례사는 예나 지금이나 따분하고 지루한 건 마찬가지인데 주례가 없는 결혼식을 하니까 홀가분하고 좋다. 또 가까운 지인들만 모신 자리라 부담도 덜하고 파티같은 느낌이라 덩달아 젊어지는 기분"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한 커플이 친구들과 함께 셀프웨딩촬영을 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주례없는 결혼식', '가까운 지인만 초대한 미니멀 결혼식' 등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이런 결혼이 점차 늘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그 이유도 다양했다.

1년 전 주례없는 결혼식을 올린 B커플은 "서른이 넘은 나이에 결혼을 하려고 하니 마땅히 주례를 봐주실 분이 없었다"며 "더군다나 부모님들이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을 주례로 모시길 권했지만 우리 커플에 대해 잘 알지 못하시는 분이라 그럴거면 주례가 없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9월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결혼식을 올린 C커플은 "결혼식 주인공은 우리 둘이고 무엇보다도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파티같은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펜션을 빌려 펜션 앞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며 "결혼식에서 함께하고 싶은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서로 교감을 많이 하고 싶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강조했다.

C커플은 또 "다른 커플들처럼 식장을 잡기위해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됐다"며 "결혼식 후 가족, 친구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간단한 게임을 진행하면서 평생 잊지못할 결혼식을 올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엄숙하고 상투적인 결혼식은 뒤로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가족과 친구, 결혼 당사자들이 주인공이 돼 그야말로 결혼식을 즐기는 문화가 점차 늘고 있다.

이 외에도 전문 사진기사 없이 웨딩촬영을 하는 '셀프웨딩 촬영', 결혼 전 신부와 신부 친구들이 함께 모여 밤 늦게까지 파티를 여는 '브라이덜샤워' 등 새로운 문화도 생겨나고 있다.

오는 19일 결혼식을 앞둔 예비신부 김모씨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비신랑과 원하는 옷과 소품 등을 이용해 셀프웨딩촬영을 했다"며 "장소나 사진 컨셉 모두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촬영한다는 생각보다는 친구들과 경치가 좋은 곳에서 놀다 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모씨는 또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이 호텔방을 잡아 파티룸으로 꾸미고 깜짝 브라이덜샤워(결혼 축하파티)를 해줬다"며 "밤새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그동안 결혼식을 준비하며 힘들었던 점들에 대해서도 털어놓으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긴장감도 많이 덜수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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