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조천읍에서 항일 운동을 벌였지만 국가가 냉정하게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는 임도현 항일 조종사를 경북 청도군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잊혀진 영웅’이란 주제로 기억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어 훈훈함을 더하고 있다.

보훈처는 고 임도현(1909~1952) 항일 조종사를 ‘객관적인 검증자료 미비’를 이유로 무려 8차례나 심사에서 탈락시켰다.

임도현 조종사의 조카 임정범(63)씨는 10년이 넘게 백부를 독립유공자로 지정시키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독립유공자 지정 여부를 담당하는 보훈처의 대답은 매번 ‘No’였다. ‘객관적인 검증자료 미비’를 이유로 들었다.

임도현 조종사는  일본 도쿄 인근 다치카와(立川) 비행학교에서 비행훈련을 받던 도중 동료 6명을 포섭해 비행기를 몰고 중국 상하이로 탈출했다.

제주도를 거쳐 무려 1800여㎞를 날아 상하이 인근 옥수수밭에 비상착륙했다. 이어 백부는 상하이외국어학교와 류저우(柳州)육군항공학교 등에서 수학한 뒤 중위로 임관했다.

이후 쓰촨(四川)성 중경중앙군사정부 직속부대에 소속돼 장제스를 보좌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제자들을 양성했고, 본인은 태평양 전쟁에서 전공을 세웠다. 일본군과 전투 중 머리에 총알을 맞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기도 했다.

제주시 조천읍에 있을 때도 곡물공출에 저항하다 고문을 당했다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과 경찰조서도 발견되기도 했다.

‘조천읍지’에도 ‘항일 공출 부역 일체 거부 투쟁 징역’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백부의 항일정신은 마을사람들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중국에서의 활약은 중국 광시(廣西)성인민출판사가 펴낸 ‘류저우 20세기도록’라는 책에 실린 사진 속 인물이 백부라는 마을사람들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보훈처가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자 경북 청도군 이서고등학교 학생들이 임도현 조종사를 ‘기억’하자는 뜻에서 두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이서고등학교에 재학중인 3학년 전현진 학생을 비롯한 자율동아리 ‘ARMY’ 회원들은 ‘잊혀진 영웅’이란 주제로 임도현 조종사의 배지를 만들어 판매하고 벌어들인 수익금을 기부할 계획이다.

자율동아리 ARMY에는 전현진 학생을 비롯해 신현종, 최태욱, 박성주, 이승목, 윤인태,  김윤선, 곽별,  박상우, 이연우, 장선진, 전민규, 조규호, 이지우, 정두배 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장교, 부사관을 꿈꾸는 학생들로 구성된 ARMY는 매주 군대에서 일어난 사건을 공부하고, 우리나라의 잊혀진 영웅을 조사해 알아가고 있다.

그동안 학생들은 ‘빨간 마후라의 영웅 김영환 장군’, ‘우리나라 최초 여성 파일럿인 권기옥 독립운동가’와 같은  ‘잊혀진 영웅’을 기록하고 기억해왔다.

자율동아리 ARMY의 전현진 학생은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영웅들을 저희가 알아야 하는데 요즘 사회에서는 무관심 하다고 생각한다”며 “무관심 뿐만 아니라 이런 영웅들은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책에도 남지 않아 저희가 일부러 관심을 갖지 않으면 모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말이 있다. 큰 사건의 역사 뿐만 아니라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국민으로서, 미래의 군인을 꿈꾸는 학생으로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제주도민일보>네이버 포스트에 공유된 기사를 보고 임도현 비행사의 삶을 공부하기로 했다. 학생들은 단순히 공부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해보면 어떨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영웅들을 소재로 직접 배지를 디자인해 판매해 보면 좋겠다는 계획에 학생들은 ‘의기투합’했다.

전 학생은 “평소에 동아리 활동을 통해 알게된 영웅들을 직접 배지를 디자인해 판매하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임도현 비행사님의 조카분이신 임정범 선생님께서 비행사님을 독립유공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사비를 들여 홀로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주도민일보>기사를 통해 알게 됐고 임정범 선생님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동아리 부원들과 의논 끝에 배지를 제작해 얻은 수익금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학생들은 배지 디자인을 만들지 못한 상태다. 기말고사 기간과 겹쳐 있는 만큼 학생들은 틈틈이 임정범 비행사의 자료를 더 조사한 뒤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토론을 거쳐 디자인 작업을 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임정범 비행사의 배지는 11월에 열릴 ‘학암축제’때 학생들에게 1차로 판매하고 또한 SNS에 홍보해 판매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ARMY 소속 학생들은 매년 ‘잊혀진 영웅’ 한분씩을 선정해 배지를 만들 예정이다. 그 첫번째 배지 주인공이 바로 임도현 비행사다.

학생들은 임정범 비행사의 유품이 제주4.3때 불에 타 없어진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또한 항일운동에 투신한 ‘제주의 영웅’ 임정범 비행사가 독립유공 심사에서 매번 제외돼 믿을수 없고 화가 난다고도 토로했다.

전현진 학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하신 임정범 비해사님께서 하늘에서 눈물을 흘리시고 계실 것을 생각하니 갑갑해 져만 갔다”며 “당시 기록이 아니라 해방후 기록된 것이라고 해 인정 받지 못 받은 점, 전해져 오는 증언과 유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훈처에서는 인정할수 없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영웅들을 저희가 조금더 관심 갖고 임도현 선생님과 같이 추적해 나간다면 보훈처에서도 인정해 주시지 않을까 싶다”며 “임정범 비행사님 께서는 일본 비행기를 몰고 탈출하시는등 정말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신 분이다. 수많은 고문,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입은 총상과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한채 4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신 정말 저희의 가슴아픈 역사”라고 주장했다.

특히 전 학생은 “조국을 위해 임도현 비행사님이 희생하셨다. 잡히면 고문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국을 위해 계속 시도했다”며 “과연 이러한 일을 어느 누가 앞장서서 한다고 나서겠나. 환영 받아 마땅하신 분인데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해 하늘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실 것이 분명하다. 임도현 선생님의 정신을 본받아 이 나라를 위한 훌륭한 지휘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전현진 학생은 ‘잊혀진 영웅’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도 강조했다.

전 학생은 “정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알아야할 영웅들이 너무나 많다. 3년동안 잊혀진 영웅을 알아보는데도 끊임 없이 발견되고 있고 지금도 제가 모르는 영웅이 정말 많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렇게 저희처럼 영웅들에 관심을 갖지 않고 궁금해 하지 않는다면 정말 50년후엔 그 영웅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같다는 생각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해주신 영웅들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 학생은 “교육에 있어서도 중요하고 지나간 역사지만 그분들의 희생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인 만큼 정말 학생들 모두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이뿐만 아니라 현재 살아계시는 전쟁영웅들이 폐지를 줍고 사시거나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신다는 글을 보았을 때  마음이 아팠다. 한 몸 희생해 조국을 위해 싸웠는데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다니 정말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 들 다 저희가 관심을 가지고 문제점을 하나하나 꼬집어 나간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