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희 제주스마트복지관 총괄팀장.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란 개인적인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현실을 사진처럼 리얼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예술의 한 양식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사람의 손으로 그린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실제 사진과 구별이 어렵거나 또는 사진보다도 더 실제에 가까워서 사람들로 하여금 헛갈리게 만드는 예술작품을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또는 극사실주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필자처럼 그림에 까막눈인 사람은 이러한 하이퍼리얼리즘 작품을 보면 ‘어차피 사진처럼 똑같이 그린 그림이라면 카메라 셔터 한 번 누르면 되는 것을 굳이 힘들게 그림으로 그려야 할까?’라고 핀잔을 한다.

하이퍼리얼리즘 화가 정중원은 이렇게 답했다. 사진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단지 그림을 실체와 같이 정교하게 그리는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상과 현실의 혼돈 속에서 잠깐이나마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에 작품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실물보다도 더 실물같은 물방울 그림을 보면서 '그림 참 잘 그렸다'는 생각만 했지 이렇게 깊은 철학이 담겨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가상과 실제가 서로 혼돈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이퍼리얼리즘으로 구현된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는 원본을 흉내내는 가짜, 복제품, 사이비 또는 그러한 것들로 이루어진 가상세계를 말하는데, 하이퍼리얼리티는 그냥 복제품 정도가 아니라 원본보다 더 원본다운 복제품이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돈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가상이 현실을 거꾸로 지배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한 예로,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가장 대표적인 가상세계라고 할 수 있는 SNS를 들 수 있다.

SNS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만든 가상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맛있는 음식(현실)을 지인들과 공유하기 위해 SNS(가상)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SNS에 올리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가상이 현실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하이퍼리얼리즘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마찬가지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사회는 개인이 모여서 만든 가상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비대해지면서 권력과 계급이 만들어지고 결국에는 개인이 만든 가상의 사회가 오히려 개인을 억압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실제로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하이퍼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이 극단화된 형태로 볼 수 있지만, 극도로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리얼리즘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아이러니컬한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작년에 제주도에는 스마트복지관이라는 이름으로 건물이 없는 사회복지관이 생겼다. 스마트복지관은 청사건물이 없어서 가상복지관이라고 불리지만 기능적이 측면에서는 원본 사회복지관의 역할을 동일하게 수행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스마트복지관은 건물만 없을 뿐이지 오히려 스마트워크 환경과 현지완결형 복지서비스를 추구하다보니 운영의 고효율화와 서비스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향상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운영되는 시범사업이다보니 거의 1주일에 한 번 꼴로 제주도까지 비행기를 타고 건물도 없는 스마트복지관을 견학을 오고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가상복지관의 운영과 사업방식을 현실의 사회복지관에서 오히려 벤치마킹을 하고자 하는 일련의 현상 또한 하이퍼리얼리즘 철학에서 오는 아이러니컬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스마트복지관의 하이퍼리얼리즘은 단지 기존 사회복지관의 기능과 역할을 그대로 복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동안의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는 사회복지관의 설립과 운영방식을 타파하고, 역할과 기능의 재정립을 통한 보다 현실적인 사업운영으로 우리나라 사회복지관의 왜곡된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본래 사회복지관의 리얼리티(reality)는 지역주민의 참여와 협력을 통하여 지역사회의 복지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하여 종합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사회복지관의 운영에 있어서도 지역사회의 특성과 지역주민의 문제나 욕구를 사업에 반영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지역성의 원칙), 사회복지관의 능력과 전문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자율적으로 운영하여야 한다(자율성의 원칙)는 기본원칙이 있다. 그런데 전국에 460개가 넘는 사회복지관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별로 제공되는 서비스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했다기 보다는 사업지침과 규정을 반영한듯 사업진행이 대부분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듯 보인다.

또한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이고 일률적으로 진행되는 시설평가와 공공의 역할론을 앞세운 현재의 공무원식 지도감독체계 하에서는 사회복지관의 자율성을 논하는 자체가 비현실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하이퍼리얼리즘의 예술적 목표는 대상을 기술적으로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리얼한 묘사도 결국은 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제주특별자치도 가상복지관시범사업인 스마트복지관도 '스마트워크'니 '모바일 오피스'니 해도 그것은 결국 운영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기술적인 묘사에 불구하다.

다만 스마트복지관에서 보여주는 하이퍼리얼리티를 통해서 시대적 환경에 걸맞는 사회복지관의 운영과 민관의 역할 재정립, 그리고 사회복지사들의 정체성 확립에도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화가 정승원은 말한다. '우리는 이미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품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평생 자신을 공산품으로 만들다가 죽는다. 예술품까지는 아니더라도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인 인생을 살아야 후회가 없지 않을까? 왜냐하면 내가 실제고 원본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공공과 민간의 사회복지인들이 한 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송장희 제주스마트복지관 총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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