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조종사 백부 유공자등록 투쟁 임정범씨
보훈처 ‘객관적 자료 미흡’ 되풀이에 ‘속앓이’

임정범 씨(63)는 2005년부터 백부 고 임도현(1909∼1952) 항일 조종사를 독립유공자로 지정시키기 위해 국가보훈처와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임씨가 확보한 중국 류저우(柳州)육군항공학교 시절 백부의 사진(빨간색 원안). 임씨 제공 동영상 화면 갈무리.

임정범 씨(63)는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속이 타들어간다.

10년이 넘게 백부인 고 임도현(1909∼1952) 항일 조종사를 독립유공자로 지정시키지 못한 데 대한 한탄 때문이다.

임씨는 2005년 광복절을 맞아 백부의 항일 업적을 인정받으려고 했을 때만 해도 그 작업이 이렇게나 길어질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임씨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백부는 일본 도쿄 인근 다치카와(立川) 비행학교에서 비행훈련을 받던 도중 동료 6명을 포섭해 비행기를 몰고 중국 상하이로 탈출했다.

제주도를 거쳐 무려 1800여㎞를 날아 상하이 인근 옥수수밭에 비상착륙했다. 이어 백부는 상하이외국어학교와 류저우(柳州)육군항공학교 등에서 수학한 뒤 중위로 임관했다.

임정범 씨(63)는 2005년부터 백부 고 임도현(1909∼1952) 항일 조종사를 독립유공자로 지정시키기 위해 국가보훈처와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임씨가 확보한 상해 일본총영사관 경찰부 작성 취조서류. 임씨 제공 동영상 화면 갈무리.

이후 쓰촨(四川)성 중경중앙군사정부 직속부대에 소속돼 장제스를 보좌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제자들을 양성했고, 본인은 태평양 전쟁에서 전공을 세웠다. 일본군과 전투 중 머리에 총알을 맞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기도 했다.

제주시 조천읍에 있을 때도 곡물공출에 저항하다 고문을 당했다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과 경찰조서도 발견됐다.

‘조천읍지’에도 ‘항일 공출 부역 일체 거부 투쟁 징역’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백부의 항일정신은 마을사람들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임정범 씨(63)는 2005년부터 백부 고 임도현(1909∼1952) 항일 조종사를 독립유공자로 지정시키기 위해 국가보훈처와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임씨가 확보한 백부의 자필 이력서 등 자료. 임씨 제공 동영상 화면 갈무리.

중국에서의 활약은 중국 광시(廣西)성인민출판사가 펴낸 ‘류저우 20세기도록’라는 책에 실린 사진 속 인물이 백부라는 마을사람들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백부의 항일운동에 대한 증거는 수두룩하지만 국가보훈처의 대응은 냉정했다. 본인이 남긴 기록 외에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는 이유에서 ‘객관적인 검증자료 미비’라며 무려 8차례나 심사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그동안 유가족 측의 끈질긴 정보수집 노력과 수많은 언론보도 검증은 그 반대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임정범 씨(63)는 2005년부터 백부 고 임도현(1909∼1952) 항일 조종사를 독립유공자로 지정시키기 위해 국가보훈처와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백부의 항일을 기록한 조천읍지. 임씨 제공 동영상 화면 갈무리.

특히, 독립운동의 경우 당시 기록자료 확보가 쉽지 않고, 그 주요무대가 중국인 경우 자료 찾기가 더욱 어려운 점, 제주에선 4·3 당시 화재로 자료가 많이 소실된 점 등을 고려하면 국가차원의 기록 확보 노력이 아쉽다는 지적이다.

만 12년의 노력에도 백부의 애국활동이 여전히 국가차원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동안 임씨는 국가보훈처와 지난한 싸움을 벌이며 정신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상처만 커졌다.

그럼에도 임씨의 지난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오는 22일 정부의 행정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임정범 씨(63)는 2005년부터 백부 고 임도현(1909∼1952) 항일 조종사를 독립유공자로 지정시키기 위해 국가보훈처와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백부의 총상을 입증하기 위해 작업 기록. 임씨 제공 동영상 화면 갈무리.

“행정심판이라고 해봐야 결과가 뭐 다르겠냐”면서도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는 임씨. 그는 “안 되면 무엇 때문에 안 되는지 답이라도 줘야 하는데, 국가보훈처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만 한다”며 하소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6일 제62회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독립운동가 한 분이라도 더, 그 분의 자손들 한 분이라도 더, 독립운동의 한 장면이라도 더, 찾아내겠습니다. 기억하고 기리겠습니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임정범 씨(63)는 2005년부터 백부 고 임도현(1909∼1952) 항일 조종사를 독립유공자로 지정시키기 위해 국가보훈처와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임씨에 대한 기사. 임씨 제공 동영상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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