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오바마 미 대통령, 오른쪽 이명박 대통령

【서울=뉴시스】유머는 리더십을 이긴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선진국들의 성공한 대통령은 통치력 못지않은 유머를 과시했다.

미국의 링컨 전 대통령은 자신의 약점을 유머로 커버했으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농담을 즐겨 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도 유머를 잘 구사했다. 대통령의 유머는 국민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기도 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어 민감한 문제를 푸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폐막된 서울 G20정상회의 기간 중에 열린 각국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유머를 구사, 긴장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미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미국의 정책으로 한국에 핫머니(투기자금)가 유입될 우려는 없느냐'는 민감한 질문에 "그런 질문은 오바마 대통령이 없을 때 해야지, 같이 있을 때 하면 되느냐"고 답해 무거운 분위기의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튿날 열린 한·프랑스 정상회담에서도 이 대통령의 유머는 이어졌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업무도 과중한데 점점 젊어지는 것 같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화장품인)설화수를 많이 써서 그렇다"고 답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유도했다. 유명 프랑스 화장품 못지 않게 우리나라 화장품의 품질이 좋다는 것을 은근슬쩍 알린 '뼈있는' 유머였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분위기를 푸는 말씀을 많이 했다. (유머로) 한·미 FTA 문제로 자칫 딱딱해 질 수 있는 분위기를 없애 정상회담이 부드럽게 진행됐다"고 귀띔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2003~2008 재임)도 유머감각이 뛰어났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인 지난 2005년 주한미군 고위 장성들을 초청한 오찬에서 이런 유머를 던졌다.

"우리나라에도 성씨가 특별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시원찮은 검사라도 성이 명씨면 '명검사'가 되고, 아무리 대위가 되도 성이 임씨면 맨날 '임대위', 임시 대위가 되고 또 대장이 돼도 성이 부씨면 '부대장' 밖에 못되는 그런 성이 있다. 굿맨은 (부모님이 주신) 아주 좋은 선물이다." 굿맨은 이날 오찬에 참석한 미군 연합사 기획참모부장인 '존 굿맨'을 지칭한다.

노 전 대통령은 격의 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2003년 3월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2003년 5월 21일 광주 5·18행사 추진위원회 간부 회동에서)는 등 솔직한 말을 내뱉어 비판을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1998~2003)도 유머에 탁월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반평생을 납치·투옥·연금·사형선고 등 극단의 고통 속에서 살았지만 유머를 잊지 않았다. 외워서 구사하는 유머보다 뛰어난 순발력으로 재치있는 유머를 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을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밝혔다. "사실 죽는 것은 겁났다. 큰 소리는 쳤지만 사실은 살고 싶어 재판정에서 재판관 입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기징역만 받았으면 했다. '무'하면 입이 나오고 '사'하면 입이 찢어진다. 입이 나오면 내가 살고 입이 찢어지면 내가 죽는다."

다독가였던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면서 "감옥에 한 번 더 가야할 모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지난 2000년 개그맨 심현섭씨가 자신의 성대모사로 인기를 얻자, "나를 흉내내 돈을 많이 벌었으면서 로열티도 내지 않고 과일상자 하나 안보냈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1993~1998 재임)은 특유의 고집스러움으로 주위 사람들을 웃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0년대 중반, 대통령직선제 개헌관철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대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었을 때의 일화이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백만인 서명운동을 하자'고 제안하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100만명이 뭐냐. 1000만명 정도는 해야지"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1000만명이나 서명을 받을 수 있겠나'라고 하니 김영삼 전 대통령은 '누가 세어 보나.그냥 하면 되지'라고 답했단다.

이승만(1948~1960 재임) 박정희(1963~1979 재임) 전두환(1980~1988 재임) 노태우 전 대통령(1988~1993)의 재임 시절은 암울했던 시대 상황 등으로 대통령의 유머가 거의 실종됐던 시절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로 반공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하며 승리하는 자는 중단하지 않는다"는 말로 경제 성장을 역설하는 데 주력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잘 살게 된 농촌을 보고 기분이 좋을 때면 유머로 주변 사람들을 웃기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보다 퇴임 후 유머를 구사했다.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선 때 자신을 풍자의 소재로 써도 된다고 말해 이때부터 전직 대통령과 정치인에 대한 자유로운 풍자 작품이 나왔다.

한 전직 대통령의 통역 담당자는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 유머 있는 분들이 회담을 부드럽게 이끌었다. 유머는 굉장한 경쟁력이다. 잘 웃고 웃기면 점수를 따고 들어가게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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